학창시절, 백일장 대회 휩쓸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면서
문학작가 꿈꾸며 수필·단편소설
습작…1986년 주부글짓기 장원
199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가람시조문학상 등 작품활동 활발

■ 만나봅시다- 진순분 시조시인의 詩 쓰는 삶

이인칭으로 부르면

고요히 너 부르면 바다 펼친 푸른 서책

물결이 차고 넘쳐 밀물지는 갓밝이쯤

그 눈빛 중모리장단 속속들이 파고들지

하마 올까 예감의 촉 간절히 너 부르면

돋을볕에 돋는 시어 마음 모서리 환해지고

때마침 휘모리장단 문장 하나 몰고 오지

늦게 피어 뜨거운 피 삭이는 밤이 오면

그 바다 품에 안긴 사유도 깊어가고

또바기 진양조장단 벼름벼름 받아쓰지

진순분 시조시인의 시조 ‘이인칭으로 부르면’은 제42회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작이다. 이인칭을 향한 애절한 사랑과 마음을 여러 장단의 음악으로 담아낸 예술적 의장이 돋보이는 명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진순분 시인은 “그해 연초에는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주는 본상을 수상하는 등 영광스런 일이 기적처럼 연달아 다가왔다”면서 “지금껏 초심의 자세로 시를 써 왔듯 그 마음 흐트러지지 않게 늘 다잡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람시조문학상은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 시조 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역량 있는 시조시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979년 시조문학사에서 제정해 2000년부터 전북 익산시에서 시상하고 있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진순분 시조시인은 시조에 대해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라 할 수 있다”면서 “시조마다 장단과 가락으로 운율을 이루는데, 그러한 율격이 시조가 가진 매력”이라고 말한다.
진순분 시조시인은 시조에 대해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라 할 수 있다”면서 “시조마다 장단과 가락으로 운율을 이루는데, 그러한 율격이 시조가 가진 매력”이라고 말한다.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6권의 시조집
“영광된 자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지요. 상금도 크고…, 어머니가 큰 상을 받았다고 눈물을 보이시며 좋아하셨어요. 정말 효도하는 것 같아 뿌듯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학창 시절부터 “글 좀 쓴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학교 대표로 백일장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 도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86년,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수원화성 장안공원에서 글짓기대회가 열렸지요. 아이 원고지를 받으려고 내려갔는데, ‘어머니도 내보세요’라며 내 몫의 원고지도 주는 거예요.”

당시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가 주최한 백일장은 주부와 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시인은 시제 ‘세월’에 맞춰 시를 썼다. 그 대회에서 시인도 장원, 딸도 장원을 차지하면서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시인은 1988년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에 입회, 꾸준히 작품활동을 펼쳤다. 당시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그러던 중 199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서해안’ 작품으로 시조 부문 당선에 이어 1991년 문학예술 시, 1993년 한국시조 신인상 등 세 번의 등단 관문을 거쳤다.

시인은 ‘안개꽃 은유’ ‘시간의 세포’ ‘바람의 뼈를 읽다’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익명의 첫 숨’, 현대시조 100인선 ‘블루 마운틴’ 등 지금까지 6권의 시조집을 냈다.

또한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수원문학상 작품상(2000), 농촌문학상(2005), 단수시조대상(2006), 시조시학상 본상(2007), 한국시학상(2008), 올해의시조집상(2019) 수상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윤동주문학상(2020) 수상 시집 ‘익명의 첫 숨’, ‘문학과 비평’ 시 부문 문학대상(2023) 등을 수상했다.

문학창작반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
시인을 ‘시조의 세계’로 안내한 이는 故 정운엽 선생이다. 문인협회에서 만난 선생은 시인의 시를 보고 ‘시조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시조를 쓰다 보니 굉장히 매력이 있더라고요. 시절가조(時節歌調)라고 하잖아요. 시조는 시 시(詩)자가 아닌 때 시(時)자를 씁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달라지는 건 아니고요, 시조는 정형화된 그릇에 담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시조는 시절가조의 준말이다. 현대시조는 3장6구12음보를 따른다. 초장, 중장, 초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은 2구 4음보로 돼 있다. 고시조처럼 음절의 격식에 얽매이진 않지만, 종장 첫 음보 3자는 글자 고정으로 불변의 형식적 제약이 있다.

시인도 그랬듯이, 처음 시조를 어렵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문학창작 강의를 할 때 시 중심으로 구성하고, 시조는 양념 격이라고. 

“시나 글짓기 강의를 10여년간 진행하고 있는데, 시조를 어렵게 생각해서 처음에는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접하다 보면 시조의 매력에 빠지거든요. 수강생 중 시조 부문 등단 작가가 꽤 됩니다. 하하하.”

시인은 등단 이후 문학의 저변 확대와 후진 양성을 위해 강단에 서 왔다. 지금까지 시인이 만난 수강생들은 수백 명에 이른다. 수원시낭송가협회 초대 회장을 맡아 시낭송 대중화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시인에게는 올해 들어서도 수상 소식이 줄을 잇는다. 이달 7일에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경기지부가 수여하는 ‘경기펜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 공모에 선정돼 지원금(700만원)을 받게 됐다. 

“시조시인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또 후학 양성에도 다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지원 등 공모 결과를 보면 자유시 10인에 시조는 1인이 대부분이지요. 공교롭게도 내 시집은 모두 시조시집입니다.”

시인은 현재 수원 화서2동 행정복지센터, 수원 중앙도서관, 수원문인협회 인문학 강좌 문학창작반 ‘시와 율’, 경기 용인 수지장애인복지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학창작동아리 글타래 강사로 활동 중이며,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자문,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이사, 열린시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수원시지부 부회장, 수원예총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시인은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시조의 매력에 빠질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쓰고, 강단에도 서려고 한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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