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동물이 하는 짓은 다 한다-55

<디기탈리스 꽃잎의 얼룩점은 벌을 끌어들이는 ‘꿀샘 안내도’이다. >

 

시인은 곧잘 ‘꽃과 나비’, ‘꽃과 벌’을 연인사이로 그린다. 꽃을 소녀로, 나비나 벌을 소년으로 본다. 나비와 벌이 꽃을 찾는 모습을 보면 소녀를 찾아가는 소년의 간절한 모습 같기 때문이다. 또한 꽃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소곳이 기다리는 소녀를 연상케 한다. 꽃과 나비가 만나는 모습은 마치 연인들이 만나는 것 같이 강열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뒷면에는 실은 꽃과 나비, 그리고 벌 각각의 강력한 생식본능의 의지가 숨어 있다. 꽃은 벌과 나비를 불러 들여 자신의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보내는 동시에 다른 꽃의 꽃가루를 자신의 암술머리에 수정시키려고 한다. 벌과 나비는 꽃이 원하는 목적을 이뤄주면서 꽃이 주는 꿀과 꽃가루를 얻어간다. 이들이 얻어가는 꿀과 꽃가루는 알을 낳는 여왕벌과 애벌레를 먹여 살리는 양식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작전이다.
꽃은 더 많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일수록 좋다. 해서 꽃은 아름다운 모습, 진한 향기, 야릇한 냄새, 달콤한 꿀, 영양가 높은 꽃가루를 준비한다. 이런 세레나데가 다양할수록 자신을 닮은 자손이 더 많이 퍼질 수 있다. 어떤 꽃은 꽃잎에 ‘꿀샘 안내도(nectar guide, honey guide)’를 그려 놓는다. 벌이나 나비가 꽃이 어디에 있으며, 꿀샘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도록 한다.

그런 꽃 중의 하나가 디기탈리스(digitalis)다. 독성이 강해 ‘피 묻은 손가락’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화초는 아름다워 화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독성은 심장 수축을 강화하는 강심제로 쓰인다. 꽃은 통꽃인데 아래쪽에 자주색의 얼룩점이 찍혀 있다. 어떤 사람이 얼룩점을 흰 종이로 가려놓았더니 옆의 정상 꽃은 벌이 40번 방문하는 동안 가린 꽃은 5번밖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꿀샘 안내도가 벌을 유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도 어떤 종류의 ‘꿀샘 안내도’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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