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84)

‘루르바니스모’란 말은, 도시(urban,어번)에 나가 살던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농촌(rural, 루럴)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10년 전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같은 유럽의 스페인 또한 비슷한 경제 위기에 몰렸다. 실업률이 25%까지 치솟고, 청년실업률이 40%를 넘어서는 가운데서 이상하게도 농업분야 청년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통계치가 나왔다. 이때의 이 기이한 현상을 미국 <뉴욕타임스>신문의 글로벌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2012년9월13일자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유럽의 병자로 전락해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는 스페인에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농촌생활이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귀농·귀촌이 늘면서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뜻하는 ‘루르바니스모’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당시 그리스나 스페인의 경우, 귀농·귀촌을 택한 이들의 대부분이 단순히 국가 경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농촌생활을 택하는 사람들이란 게 눈에 띄었다는 것이 취재기자의 분석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탈산업화 시대를 맞아 산업화 시대에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던 인구가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는 역회귀 현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10여년 전 스페인의 ‘루르바니스모’현상이 주목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이 땅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1월 고용통계를 보면, 나라경제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 분야 고용은 줄어드는데 반해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 수가 10만7000명 늘었다. 지난 2016년까지 매년 줄어들었던 농어촌 취업자가 돌연 2017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도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귀농·귀촌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한국형 루르바니스모’란 얘기다.

그런데 농어촌 청년취업자 증가나 농업법인 수의 급작스런 증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가 문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의 하나는,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서둘러 만든 한시적인 ‘단기 일자리들’이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청년농부 3200명을 뽑아 월 100만 원씩의 생활비와 영농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일이나, 청년 5564명을 채용해 벌인 ‘농촌 폐비닐 줍기’ 사업, 750개의 어촌 그물·어구 수거 일자리, 166명을 채용해 벌인 산불방지 낙엽제거 사업, 조류 인플루엔자 방 지를 위한 철새 도래지 감시 사업을 위해 2585명을 채용한 일 등이다.

이런 쥐어짜기식 단기 일자리로는 청년농업인 육성은 고사간에 고용참사를 막을 수 없다. 조금 더디고 어렵더라도 일자리를 찾아 귀농·귀촌하는 청년들에게 고기를 손에 쥐어주기 보다는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농업이 희망이라는 미래 비전을 가질 수 있다. 분명 우리 농업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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