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도매법인 독점하는 경매제…가격 올라도 농업인은 혜택 못 봐

▲ 시장도매인제 확대를 위한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왔다. 사진은 2020년 10월 국회 앞에서 경매제도 개혁을 위한 기자회견 현장.

가락시장 도매인제 허용 두고 장관과 설전
2020년 10월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서울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하느냐를 두고 당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김경호 사장과 농식품부 김현수 장관의 설전이 오갔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보완하고 경쟁하기 위해 2000년에 농안법에 도입된 것으로 지자체장이 시행할 수 있도록 해놨다. 하지만 농식품부 시행규칙에 적정 수와 자본금 규모에 대해 장관이 승인하도록 규제하고 있어 국회에서 만든 법을 행정입법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날선 비판의 입장을 밝히며 “생산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게 가격불안정이고, 구매자들은 가장 힘들어 하는 게 품질이 균등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게 경매제의 문제다.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시장도매인제로 장기적으로 계약재배 형태로 가게 돼 생산원가를 고려한 기준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현수 장관은 “서울 강서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를 16년간 했는데 가격불안정 해소를 못했다는 게 데이터로 증명됐다. 1994년에 농안법 파동도 겪었듯이 가락시장은 워낙 민감해 세심하게 해야지 아이디어만 갖고 확정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의견조율이 이뤄지지 않자 당시 권성동 의원은 농해수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개최하거나 공청회를 열어 난상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개호 위원장도 동의하며 여야 공동으로 시장도매인제를 포함해 농산물 유통구조에 대해 농해수위에서 공청회를 비롯한 여러 조치를 제안했지만 이후 별도의 논의의 장은 열리지 않았다.

후진국형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사이,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IMF 이후 처음으로 전년동월 대비 6% 이상 급등했다. 그럼에도 농업인은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도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이 문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 중심의 경매제가 지목되고 있다.

공정위가 시장도매인 도입 확대 개선안 제시했지만 농식품부 퇴짜
새정부 국정기조 맞춰 민간주도 경쟁시스템 도입 가능성 높아져
일본은 도매시장법 개정해 국가 역할 제한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 유도

도매법인 배만 불리는 경매제
정부와 지자체가 일부 도매법인들의 독과점을 보장하면서 2018년부터 2020년에만 1조8000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 수익을 거뒀다. 반면 농업인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며 아우성이고, 소비자도 비싼 가격으로 살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줄다리기는 수십년째 이어오고 있다. 누군가의 배를 불리고 있는 유통구조를 뜯어고쳐 모두가 상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 공동주최로 16일 열린 ‘농수산물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방향과 과제세미나’에서 한데 모아졌다.

국회 농해수위 소병훈 위원장은 “소비방식이 비대면으로 바뀐 만큼 농수산물도 새로운 유통방식을 고민해야 하는데 청주는 온라인 도매시장을 관 주도로 마련했고,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도매법인 구리청과는 온라인거래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그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런 사례를 참고해 바람직한 유통구조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국회도 공정하고 투명한 구조를 만들어가는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16일 국회에서는 후진국형에 머물고 있는 농수산물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법이 보장하는 독과점 열매
건국대학교 김윤두 교수는 국회에서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토론회만 4차례 참여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가락도매시장 5대 도매법인은 제조업, 건설업, 경영컨설팅, 분양 등 농업, 농산물 유통과 관계없는 대주주로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이란는 공익성에 관한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독점적 시장구조로 도매법인이 거둔 수익은 생산자에게 환원되기는커녕 모기업의 현금 수익창출에만 기여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동화청과의 경우 2010년 동부팜한농에 280억 원, 2015년 칸서스자산운용에 540억 원, 2016년 서울랜드 600억 원, 2019년 신라교역에 771억 원 등 매각될 때마다 가격이 뛴 것은 투기성 자산가치를 갖는 기업으로 보는 시각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법으로 독과점 열매를 보장하는 것도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경쟁촉진을 위해 시장도매인과 상장예외품목 확대 등의 규제개선안을 제시했지만 농식품부는 모두 반대 입장을 밝혔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버렸다.

김 교수는 해법으로 농안법의 시행규칙에 업무규정을 바꾸려면 농식품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을 손질해 지자체장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매법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 등 유통주체간 경쟁을 촉진하면 가격안정, 서비스 강화, 도매유통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지는 유통구조 혁신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생산자는 출하선택권과 대량판매처가 늘어나고 소비자는 높은 신선도와 물가 안정화에 기여하며 모두의 권익을 보호하게 된다”고 예상했다.

유통은 시장에 맡기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석우 농식품시스템연구부장은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농산물 거래에 주목했다. 김 부장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판매는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체 신선청과물은 비중이 34.1%에 달하며, 온라인 플랫폼 기반 서비스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며 “농산물의 품질에 더 초점이 맞춰져 플랫폼의 서비스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공영도매시장 중도매인 설문조사에서도 온라인 B2B 거래소가 만들어지면 참여하겠다는 의향이 38.6%로 무게추가 더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는 전문 산지유통단지 도입, 농산물 표준화와 등급화, 통합물류 구축, 온라인 거래 공정질서 확립, 전문인력 육성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농식품신유통연구원 김동환 원장은 정부주도의 정책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됐다는 입장이다. 김 원장은 “농산물 유통도 과감히 시장에 맡겨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고 정부는 대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부당한 감액을 하는 등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도 도매시장법인을 정책파트너로 보며 관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초과이윤을 용인해왔다고 보며, 시장논리가 아닌 정부주도의 시각이 여전하다고 이 문제를 진단했다. 이번 정부 국정기조가 민간주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농산물 유통구조 문제도 과감하게 시장에 맡기는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 또한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우리보다 앞서 2018년 일본이 농산물 유통에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할 목적으로 도매시장법을 개정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개정안은 우리의 농식품부 장관격인 농림수산대신이 갖고 있던 도매법인 허가권이 시장 개설자에 이양됐고, 중앙도매시장 개설 인가권도 인정제로 개편됐다. 전반적으로 정부 권한과 역할이 축소된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가락시장의 시장도매인제 허용에 관해 농정당국은 관계자들의 의견대립만 심화되는데도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다”며 “일본정부가 도매시장과 시장 내 거래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는 법을 개정한 것처럼 우리도 도매시장 현안에 적극적인 행보가 요청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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