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45)

-“전국 쌀 산지에 재고가 넘쳐 창고마다 ‘나락(벼) 산성’을 이루고 있다. 우리 주식이던 쌀 소비가 매년 감소하는 게 주된 이유다. 작년의 쌀농사 풍년으로 생산량까지 11% 증가해 재고 적체가 더 심해졌다.”

최근 보도된 한 일간신문의 <곡물값 폭등시대, 쌀값만 폭락!> 제하의 벼(쌀) 재고관련 기사다.
쌀농사 풍년으로 45년 이래 최대폭으로 쌀값이 떨어지자, 정부가 나서서 부랴부랴 가격안정을 위해 농민들로부터 올해 2회에 걸쳐 37만 톤의 쌀을 사들여 비축하느라 법석이고, 농민들은 또 폭락하는 쌀값 때문에 시름 속에 일손을 놓고 있다.

# 6.25 전란 후, 나라 안 온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간단치 않았던 1960~ 1970년대에는 마을 부잣집 마당 한 귀퉁이에 ‘통가리’라고 부르던 벼 저장창고가 있었다. 말이 창고지, 가마니나 멍석 등으로 바닥을 두툼하게 돋우어 깔고, 어른 몇 아름 되는 키 높은 원통을 만들어 돌려세운 다음, 그 위에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삿갓 모양의 지붕을 얹은 간이 움막 같은 임시 저장고였다. 이곳에 탈곡한 벼를 겨우내 저장했다.

농사짓는 규모가 한 섬지기(20마지기) 이상은 돼야 이 통가리 창고를 지을 명분이 있었다. 그러니 자연 논농사가 주업이었던 마을에서는 어깨 뻐근해지는 위세를 갖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 이만큼 농사짓는 사람이오~!”하는 표식같은 상징물이기도 했다.

이 통가리에 벼를 저장해 놓고는 이듬해 농사철이 나설 때까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야금야금 헐어내 방아를 찧어(도정) 현금처럼 물물교환해 썼으니, 왜 자랑스럽지 않았겠는가. 그 자랑스러웠던 ‘현금 저장창고’ 통가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지역농협 미곡 종합처리장 RPC(Rice Processing Complex)다.

# 우리나라 쌀값을 좌우하는 ‘식량자급률’이 낮아진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농사를 짓는 경지면적 감소와 소비품목 다양화에서 오는 소비자 식생활 패턴의 변화를 꼽는다. 국민들의 쌀 소비가 줄어든 대신, 빵과 면의 재료가 되는 밀과 육류 소비가 빠르게 늘었다.

이제, 국민들의 식생활 패턴이 다시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한은 쌀에 기댄 식량안보는 공염불이다. 새 정부의 농림축산식품부 정황근 장관은 “공공비축 규모를 확대하고, 2모작으로 밀을 심게 하면, 추락한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을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그런 틀에 박힌 방식으로는 ‘언 발등에 오줌 누기 식’ 밖에 안 된다.

과감하게 고식화 돼 늙어가는 우리 농업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메스를 들어야 한다.
규모화와 조직화, 그리고 안정된 ‘공시생’보다는 트랙터를 몰며 도전에 온몸을 던지는 청년농부의 육성도 시급한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한국농업에서 투자가치가 있는 가장 유망한 분야는 농가공 식품분야와 종자산업이다.”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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