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34)

- ‘삼각산 봄 구름 비 보내 넉넉하니,/만 그루 소나무의 푸른 빛 그윽한 집을 두른다/주인영감은 깊은 장막에 반듯하게 앉아/홀로 하도와 낙서를 완상하겠구나.
-임술 초여름 하한 만포가 쓰다’
조선조 후기 ‘진경산수화 시대의 화성’으로 불린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인왕제색도>(79.2×138.2cm/국보 제216호)에 따로 붙어있던 별지의 <발문> 내용이다.

이 <발문>은, 이 그림이 그려진 해(신미 윤월 상완, 즉 1751년 음력 윤 7월 상순)보다 뒤에 영·정조 때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노론벽파의 지도자(‘수구 꼴통’으로 불렸다) 심환지(1730~1802)가 쓴 것이다. 만포는 그의 호.

정선이 죽기 8년 전, 76세 되던 해에 그린 이 그림은 정선이 죽고 난 뒤 그의 손자인 정황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때 심환지가 정선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수장했다.
<발문>이 훗날 별지에 따로 붙어 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최고의 진경산수화가가 그린 최고의 진경산수”로 평가되고 있는 이 그림은, ‘인왕’=경복궁 서쪽 높이 338m의 인왕산의, ‘제색’=비가 오고 난 후 막 갠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인왕산 봉우리들을 시커먼 먹으로 힘차고 굳센 붓질을 수없이 반복해, 산봉우리들이 입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그 바위등성이 아래로 자욱이 깔린 옅은 비구름과 물안개는, 붓 한번 대지 않고 텅빈 여백으로 둬 음양의 조화를 간단없이 표현했다.
76세의 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활력과 기세가 쇠하지 않고 등등하게 살아있는 역작이다.

# 이 그림엔 눈물 어린 절절한 사연이 얽혀 있다. 정선 평생에 ‘절친 중의 절친’인 시인 이병연(1671~1751)이 몸이 아파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때, ‘안돼, 꼭 살아야 한다!’며 이병연의 집이 있는 인왕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래 없는 폭포와 안개까지 그려 넣으며, 온 힘을 다해 친구를 치료하듯 인왕산 봉우리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제발 살아만 다오!’

그러나 친구 이병연은, 그런 정선의 애절한 바람은 아랑곳없이 이 그림이 채 완성되기 석 달 전인 1751년 5월에 세상을 떴다.

이 그림은 해방 후 서예가 손재형 선생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함께 수집해 가지고 있었는데, 그 뒤 여러 골동 수집가의 손을 거쳐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들 이건희 회장 사후 2020년 10월에 삼성일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하는 <이건희 컬렉션> 1주년 기념전에 나들이 한 터여서, 그림에 얽힌 일화까지를 들여다보는 마음이 눈물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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