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농촌 어르신들이 
농업에서 안정적으로 은퇴해 
노후의 삶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머니는 지난 1월 23일에 쓰러지셨다. 설날을 1주일 앞둔 일요일 아침이었다. 전날 난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장에 가서 설 준비를 위한 물건들을 사 드리고 그날 저녁에 돌아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머니를 발견한 사람은 윗집 어르신이었다. 집에 인기척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어머니는 거실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택시를 불러 어머니를 태우고 인근 군소재지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입원은 어렵다고 해 다시 방향을 돌려 광주의 한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입원은 쉽지 않았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리가 있어도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해서 바로 입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다행히 처음 찾았던 대학병원에서 자리가 생겨 코로나19 검사를 마치고 응급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병명은 뇌경색.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마비가 되었다. 다행히 말하는 기능은 손상되지 않아 응급실에서 만난 어머니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 디야”라며 한 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그곳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주일간 치료를 받고 다시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무래도 자식들이 가까이에 있는 병원으로 와야 더 잘 돌봐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 병원에서 3개월을 치료 받았다.  팔십 평생 처음으로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된 어머니는 병원 생활을 몹시 답답해 하셨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모든 게 불편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복분자밭 걱정을 하셨다. 어머니하고 전화 통화를 할라치면 “복분자밭에 가서 비료 뿌려야 한다”, “복분자 가지 쳐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식들한테만 말한 게 아니었다. 담당의사에게도 자주 푸념을 하신 모양이다. 담당의사는 문병 온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복분자만 생각하지 않으면 나으실 겁니다”라고 말하며 웃으셨다. 어머니는 자식들보다 더 자주 마주했던 복분자밭이 더 걱정됐던 것 같다. 이제는 몸도 힘드니 농사일을 줄이시라고 해도 어머니는 “놀면 뭐 한디야, 이거라도 지어야 먹고 살지” 하면서 천여 평이 되는 밭농사를 고집하셨다. 그런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나니 더 강하게 농사를 만류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됐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농업인의 정년이 없고 또 노후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농사가 곧 생존의 보루가 된다. 유럽처럼 농업인이 60세 무렵에 은퇴를 하면 농업정책이 아니라 사회보장정책으로 농업인을 돌봐주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제도 자체가 없다보니 80살이 돼도 90살이 돼도 농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농사를 지어야 조합원 대접을 받고 직불금이나 농민수당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는 인권의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농사는 자유이겠지만 많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한여름 뙤약볕서 밭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어머니는 한 달 전에 다시 대전의 한 재활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 대학병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끝나서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으로 옮겼다. 자식들은 어머니께 “재활을 열심히 해서 걷기만 해도 시골에 갈 수 있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열심히 운동하시라”고 당부했다. 어머니의 병환이 마음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농사일을 하지 않고 당신의 몸을 온전히 돌볼 시간을 갖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농촌 어르신들이 농업에서 안정적으로 은퇴해 노후의 삶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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