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95)

# 입추(立秋)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한 해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로 올해는 양력 8월7일이다.
이날부터 겨울에 드는 입동(立冬, 양력 11월7일) 절기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입추 무렵은 “발등에 오줌 싼다”할 만큼 바빴던 농삿일들이 끝나고, 농촌은 잠시 한가해진다. 이때 벼가 한창 무르익어 간다.
그래서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동네 개가 짖는다”는 시절 한담도 있다. 벼가 쑥쑥 자라는 속도가 빨라 귀 밝은 개가 그 소리를 듣고 짖는다는 우스개 비유다.

# 고려시대의 역사를 다룬 사서 《고려사》에는 “(이때에는)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흰 이슬이 내리고, 그 뒤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입추절기 이후의 계절변화가 기록돼 있다.
또한 앞전에는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대서’ 절기가, 뒷전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해가 진 밤에는 서늘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처서’ 절기가 포진해 있다.

# 과거부터 우리 조상들이 한결같이 살붙이처럼 기대어 시절을 헤아리며 농사를 짓던 24절기는 3000년 전 중국 주나라 때 화북(화베이)지방을 중심 삼아 만들어졌다. 화북지방은 지금의 북경(베이징)을 포함한 그 이북지방으로 우리 한반도보다는 지구상에서의 위도가 높은 위치에 있다.
그런 까닭에 계절도 빨리 온다. 여기에 지구 기후변화(온난화)까지 더해져 24절기는 해가 갈수록 실제 지구 사계절과는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 신빙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 입추 절기 이후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 절기까지의 사이에는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 양력 9월7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秋分, 9월23일), 찬이슬이 내리고 추수 타작이 한창 때인 한로(寒露, 10월8일),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霜降, 10월23일) 절기가 이어진다.
아무리 코로나가 변이 바이러스다 뭐다 하며 발호를 해도, 가을은 오고 내일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2021년의 가을은 우리 사는 동안에는 영원히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무상한 가을에 들어서면서, 옛 선인의 한시 한편 가슴에 담아보기를 권한다.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각지당 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 순간의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 연못가의 봄풀은 채 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낸다.)
-주자 (朱子)의 시 <권학문(勸學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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