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85)

#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번째 추기경인 정진석(90) 추기경이 지난달 27일 선종(善終)했다. 가톨릭에서 사제가 세상을 뜨는 것을 이르는 선종은, ‘선생복종(善生福終)’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 출신 선교사 로벨리가 1652년 중국 베이징에서 선교를 위해 간행한 중국어 교리서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가 시원이다. 글자 뜻 그대로 ‘착하게 나서 복되게 생을 마치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품안에서 편안히 잠드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살아서의 ‘짊어진 짐’을 전제로 한다.

# 신교인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소천(召天, calling, death)이라고 한다. 이 한자어를 직역하면, ‘하늘을 부른다’는 말이다. 이 용어는 초창기 한국교회가 선교 때 만든 말이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데려가신다’(창5:24), ‘도로 찾는다’(눅 12:20),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다’(전12:5),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창28:21) 등으로 돼 있다. 이 말들에는 모두 ‘하나님께서(그를 하늘로) 부르신다’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가 무난한 표현이다.
‘별세하셨다’라든가, ‘숨을 거두었다’ 역시 대체로 적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불교에서 죽음을 뜻하는 용어로는, 입적(入寂)과 열반(涅槃)이 있다. 입적은 고통과 번뇌의 세계를 떠나 고요한 해탈의 경지인 적정(寂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입적과 비교되는 대등한 의미의 말로 모든 무지와 사욕을 떨친 깨달음을 뜻하는 원적, 혹은 적멸(寂滅)이 있다. 모두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일반적인 말들이다.

흔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죽음을 말할 때 얘기하는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의 소리를 따 음역한 말로, ‘불 꺼진 상태’를 말한다. 그처럼 깨달음의 경지, 보통은 죽음에 이를 때의 경지를 말한다.

석가모니는 탁발로 구한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80세에 죽었다. 그는 “비록 탁발의 삶이지만, 올바른 수행과 참다운 지혜로 마음의 농사를 짓고, 마음의 밭을 간다. 그 밭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열매, 진리의 열매를 얻는다!”고 설파했다. 마침 이달 5월19일이 그가 태어난 사월초파일 석탄일이다.

어떤 이는, 이 고통스런 바다와도 같은 이 세상에 내 뜻대로 온 것이 아니니, “그저 안 태어난 듯이 살고, 죽은 셈치고 죽은 듯이 산다”고 일갈했지만, 그 누군들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으랴. 천국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고 보면, 순우리말로 지금 이승에서 죽어 저승으로 간다는 ‘돌아가시다’라는 ‘죽다’의 높임말은, 그 얼마나 넓은 품으로 인간생명-생·노·병·사 윤회의 원리를 품고 있는 말인지 모른다.
말에도 분명 보이지 않는 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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