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남 함양

▲ 계절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는 상림공원에서는 가을이면 산삼축제가 열린다.

천년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함양
봄에는 지리산 야생화가 반기고
한여름에는 맑고 깊은 용추계곡
대봉산이 천혜의 자연으로 반긴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멀리 지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장엄하다. 길고 넓은 도도한 태백산맥의 자태가 정기를 뿜으며 자존심처럼 전해진다. 마치 호랑이의 척추를 보는 것처럼 듬직하다.
지리산 전망대에서는 지리산의 전체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이 압권이다. 제1 관문을 통해 내려오는 지안재, 오도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운전면허시험장의 S자 코스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뱀이 꼬리를 문 듯 아찔한 풍광을 선물한다.

함양 시내에 위치한 상림공원은 사계절 변신하며 아름답다. 겨울 상림숲은 봄꽃의 만개를 기다리며 가쁜 숨을 쉰다. 상림숲의 고운 숲길, 죽장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길이 감싸고 있어 운치가 있다. 찾는 이들에게 상쾌함과 천년의 고요함을 준다. 수백 년 된 전통한옥이 잘 보존된 개평 한옥마을은 일두 정여창 고택을 비롯한 선조들의 전통과 멋을 이어가는 곳이다. 함양에서는 몸에 좋은 항노화 산삼축제를 매년 가을이면 개최한다.

바람에 문답하며 안기고픈 지리산
침낭을 넣은 큰 배낭을 메고 천왕봉을 향해 훌훌 산마루를 넘던 때가 언제였던지. 20대 청춘시절의 추억이니 천왕봉을 바라만 봐도 벅차오른다.

남편 출장길에 동행해 함양땅을 밟았다. 서울 도심에서 맛있게 먹었던 ‘안의갈비찜’의 원조가 함양 안의면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연한 양념간장과 부드러운 갈비 맛의 조화가 최고다. 읍내를 벗어나 지리산 생태마을로 접어드는 휴천면 계곡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길은 원시적 순수함과 평화로움을 준다. 마을을 지키는 고목이 한옥과 돌담과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맑은 물소리와 공기에 온몸이 가벼워진다.

▲ 지리산전망대 마고할미 석상

지리산 천왕봉과 드넓은 산자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리산 전망공원에는 지리산 반달곰 조형물과 지리산을 지키는 마고할미 동상이 있다. 코로나 시대라 반달곰도 마고할미도 단단히 마스크로 무장하고 있다. 막걸리 여러 병이 놓여있는 마고할미 동상 앞에서 빌었다. 부디 굽어살펴서 역병 없는 좋은 시대가 오게 해달라고.

지리산 자락은 드넓어서 전남 남원과 구례, 경남 하동, 함양, 산청 등 다섯 개의 군에 접해있다. 예전엔 구례군 산동면에서 성삼재~노고단을 거쳐 천왕봉(1915m)에 올랐는데, 남강과 경호강 물줄기를 보며 함양읍내 쪽에서 유림면, 휴천면을 지나 지리산 자락을 둘러보는 경치가 색다른 장관이다.

마천면에 있는 서암정사는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를 배경으로 자연 암반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인 극락세계를 조각한 석굴 법당이다. 그 화려함에 넋을 빼앗긴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벽송사는 조선 중종 때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해 벽송사라 했으며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됐다가 소실된 이후 중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최치원 동상

최치원의 정신이 녹아있는 천년숲 ‘상림’
함양읍내에 있는 상림공원에 들어서면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반겨준다. 정자 너머 홍연지, 백연지에는 철 지난 마른 연밥이 물음표처럼 서있다. 상림을 둘러싼 길가에는 초록이 한창이다. 봄꽃을 피우려는 꽃씨들이 파릇파릇 새싹을 내밀고 있다.

상림숲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숲이 아니라 최치원 선생이 1100여 년 전 신라시대 때 이곳 태수로 재직하면서 홍수를 막기 위해 물길을 돌리고 둑을 쌓아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다. 숲에는 그동안의 역사를 증명하는 정자와 문화재를 비롯해 관광객을 위한 휴식·운동 공간이 형성돼 있다. 가을이면 함양의 대표적인 축제인 ‘함양 산삼축제’가 상림공원을 중심으로 열리고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는 문학축제가 열린다.

신라시대 최고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함양 태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계원필경’, ‘사산비명’, ‘법장화상전’ 등이 있다. 그의 유명한 한시로는 오언절구인 <추야우중>(秋夜雨中)이 잘 알려져 있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이렇게 괴롭게 읊고 있건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는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깊은 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아랜 만리 먼 길 외로운 마음

이 작품은 뜻을 펴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알아주는 사람 없는 세상살이의 뼈저린 고독, 만리 밖 먼 곳을 향하는 애절한 그리움이 선명하게 묘사돼 있다. 가을에 그것도 비 오는 가을밤에 함양 땅을 밟는 날, 이 한시를 읊조린다면 더욱 감동이 깊어질 것이다.

▲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

선비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한옥마을
산자락 계곡을 따라 걸으며 펼쳐지는 고택들, 돌담을 따라 걷다 마당에 들어서면 양반댁에 들어선 품위 있고 고풍스러운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개평이라는 지명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마을이 위치해 낄 개(介) 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유래됐다고 한다. 일두 정여창 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하동정씨 오담 고택 등 다양한 문화재가 숨 쉬는 고을이며, 100년이 넘은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옥이 60여 채가 있다. 우리의 오래된 뿌리를 찾아 걷는 길처럼 훈훈함이 느껴진다.

선조의 멋과 풍류를 한껏 누릴 수 있는 함양 선비문화 탐방로는 선비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개 세워져 있다. 멋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거나 한양 가는 길에 선비들이 잠시 머물러 주먹밥을 먹던 곳이다.

▲ 농월정

화림동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다. 달을 희롱했다는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을 이은 6㎞ 선비문화 탐방로는 선비들이 거닐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인근의 남계서원은 조선 명종 때 문헌공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청계서원은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김일손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함양은 천년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곳이다. 사계절 아름답다. 봄에는 지리산 야생화가 반겨주고, 한여름에는 맑고 깊은 용추계곡의 자연휴양림과 대봉산 자연휴양림이 천혜의 자연으로 반겨준다.
당일 코스로는 상림공원~개평 한옥마을~남계서원~용추폭포~용추사~용추계곡에서 즐기거나, 상림공원~하림공원~지리산가는길 오도재(지리산 조망공원)~서암정사 코스가 좋다. 1박2일로는 용추계곡~개평 한옥마을~상림공원~지리산가는길 오도재~1박(민박/펜션)~서암정사/벽송사~엄천강 래프팅 코스로 즐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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