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자연재해에도 농작물재해보험 보장은 되레 낮아져

▲ 이란우 회장은 지난 여름 긴 장마로 밭이 2m 이상 패일 정도로 큰 피해를 봤지만 보험료 때문에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은 엄두도 못 냈다.

2001년 도입된 농작물재해보험은 34만1000여 농가가 가입해 가입률 38.9%를 기록했다. 지난해 9089억 원의 보험금은 최대규모였지만 올해는 유례 없는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해의 직격탄을 맞은 농가입장에서 최후의 보루가 농작물재해보험이지만 가입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38.9%로 4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입률이 이렇게 낮은 원인은 두가지다.

지난해 농식품부는 50%의 보험료를 똑같이 국비로 지원하던 것에서 자기부담비율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것으로 바꿨다. 국비지원은 자기부담률 10~15%는 40%, 20%는 50%, 30% 이상은 국비를 60% 지원하는 것이다. 차등지원으로 바뀌다보니 자기부담률이 낮은 상품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협손해보험, 손해율 악화 이유로 보험금 깎아
농식품부 “국가지원 늘리는 건 보조금화 우려” 난색

2016년 자기부담율이 10%인 상품의 가입건수가 2만2434건이던 것이 지난해 4만4191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자기부담률이 40%인 상품의 가입건수는 같은 기간 겨우 50건 밖에 늘지 않았다. 자기부담률이 낮은 상품을 선택하면 농업인이 내는 보험료는 줄어들지만 피해가 발생하면 보험금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개편안을 내면서 재해가 다양해지고 대형화됨에 따라 농작물재해보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이에 대비하는 안전망으로서 적극적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경기 이천 율면에서 23년째 농사를 지어온 한국생활개선이천시연합회 한지윤 회원은 8월2일 200mm 가까이 내린 비로 마을의 둑이 무너지며 오이하우스 7동이 직접적인 피해를 봤다. 피해규모는 10kg 3000박스를 몽땅 버릴 정도로 막대했다.

“하필 수확 당일 하우스 파이프가 휘어질 정도로 물이 쏟아져 내렸으니까 오이는 오죽했겠어요. 시세가 4만~5만 원 했으니까 돈으로 따지면 1억 원이 넘죠. 근데 시에서 지원받은 건 250만 원뿐이었어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기 때문에 그마나도 받을 수 있었다. 한 회원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덴 이유가 있었다.

“연동하우스라 단동하우스보다 보험료가 어마어마해요. 단동하우스는 1년에 180만~200만 원 정도 보험료로 내는데 우린 몇 배가 된다고 하니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올핸 나라에서 지원하는 것도 줄었다고 하고, 농작물 80%가 피해를 입어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하니 더 엄두가 안 났죠.”

소규모로 농사짓고 있던 경우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가입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생활개선여주시연합회 이란우 회장은 1652㎡ 면적의 들깨밭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여름 폭우로 밭이 2m 이상 패여 물길이 생길 정도로 엉망진창이 됐지만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은 꿈도 못 꾼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도 됐고, 면사무소에서 피해조사도 나왔지만 보상은 전혀 없어요. 남편이랑 기계로 밭을 메꿀 생각이에요.”

아무리 적은 면적이라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만큼 보상금을 기대했지만 면사무소에선 일체 말이 없었다. 단체장을 맡고 있어 민원을 제기하기도 조심스럽다는 이 회장이다.

기후변화의 여파로 올해처럼 자연재해가 빈발해질 것이란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특히 자연재해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농업인에게 농작물재해보험은 더 중요성이 커질 보호막이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대신 지원범위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되레 국가부담을 줄인 건 제도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농식품부 김현수 장관도 지난 국감에서 보장성 강화를 위해 국가지원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 건 사실상의 보조금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농협손해보험의 약관개정도 농업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손해율(보험료 중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계속 악화되고, 부당수급 방지 즉 가입자인 농업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일괄적으로 적용되던 보상률 80%를 최근 3년 이내 적과하기 전 재해보험 지급 이력을 받았는지에 따라 50~70%로 낮췄다.

한국생활개선포항시연합회 이미숙 수석부회장도 올해 태풍으로 큰 피해를 봤지만 보험금은 쥐꼬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작년에 보험금을 수령했기 때문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농협에 바로 신고했는데 조사는 2달 지나서 나왔어요. 그 사이 쓰러졌던 벼는 다 일어났죠. 직원 말이 20~30% 피해 본 걸로 보상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데 진짜 피해는 70~80%는 될 거에요. 작년에 보상받았다고 올핸 그만큼 보상을 못 받을 거라는데 이게 무슨 보험이에요. 태풍을 두 번이나 맞아 벼농사 짓는 사람은 피해가 어마어마한데 들었던 보험도 깰 생각이에요. 이웃들도 마찬가지에요. 돈 아깝다고 다들 그래요. 농협이 자기 손해 안 볼라고 농사짓는 사람 돈 떼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지원범위를 넓힌다는 명분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대신 농식품부는 국가지원을 차등했다. 농협도 약관개정으로 사실상 보험금을 깎으면서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률 확대는 사실상 요원해 보인다. 현장에선 이미 보험으로서의 신뢰를 잃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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