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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와 ‘애니깽’

기사승인 2020.05.22  14: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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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40)

   

우리 한국인의 해외 이민 역사는 한 마디로 ‘사탕수수’와 ‘애니깽’으로 요약될 수 있다. 1903년 1월13일, 조선인 남자 102명이 일본 배(현해환)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일본 나가사키항-하와이 호놀룰루의 경로로 미국 땅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이 해외 이민의 시초다.

당시(19세기 말) 미국 하와이에서는 사탕수수 재배가 활발했었는데, 노동력이 부족해 애를 먹자 농장주들이 그때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Allen, 1858~1932)에게 조선 노동자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알렌은 대한제국 고종임금을 설득해 여권을 담당하는 ‘수민원’을 설치케 하고 이민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쇠락해 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땅에서 별 가진 것 없이 가난 속에서 고생스럽게 살던 백성들에게 하와이는 낯설지만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꿈의 땅’이라는 환상을 심어줬다.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이다. 이들을 시작으로 1905년까지 7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건너갔다.
이때 ‘사진결혼’이라는 이색풍정도 생겨났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온 조선이민자들 대부분이 노총각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있는 처녀와 하와이에 있는 노총각들이 사진으로 선을 보고 결혼을 약속했던 것인데, 이렇게 해서 하와이로 건너간 여자들을 ‘사진신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멕시코 땅으로의 이민이 이어졌다.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인 1905년, 103명의 조선인 이민자들이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났다. 목적지는 태평양 건너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애니깽’(에네켄) 농장.

에네켄은 잎모양이 용의 혀를 닮았다 해 ‘용설란’으로 불리는 열대선인장인데, 잎껍질을 벗기면 강하고 질긴 섬유질이 나와 가방 제조 원료로 이용됐다. 이 ‘애니깽’ 농장에 일꾼으로 이민을 간 것인데, 말이 이민이지 노예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다. 당시 아프리카 흑인이 5~6등급의 대우를 받았던데 반해 조선 이민자들은 그만도 못한 ‘7등급 노예’로 소나 말 취급을 당했다. 해외이민 1세대들의 피눈물 어린 역사다.

그런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의 이민 잠정 중단”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주된 명분은, 코로나 방역과 미국 일자리 보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다민족 국가이고, 지금도 이민자 수혈로 나라경제의 근간을 유지하는 나라다. 트럼프 자신도 독일 이민자 3세이고, 부인 멜라니아도 슬로베니아에서 26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다.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은, “미국 우선주의와 반 이민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정권 초기 중남미 불법이민자들을 틀어막기 위해 국경장벽을 세우고, 무슬림 입국금지로 백인 극우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재미를 본 트럼프가 코로나 방역 실패의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리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의 이민 중단 행정명령이 결정되면, 세계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피워올리던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도 이젠 사라질 판이어서, 일면 ‘각자도생’(제각각 살아갈 방도를 꾀함)해야 되는 비정한 세태를 실감케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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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 기자 history814@hanmail.net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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