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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는 사랑입니다

기사승인 2020.05.15  11: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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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 특집 - 가족사랑 손편지쓰기

본지가 지난 1월부터 공모한 “가족사랑 손편지 쓰기 캠페인”이 5월 10일로 1차 마감되었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독자여러분의 뜨거운 성원과 적극적인 참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농촌여성신문의 이번 캠페인을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간의 사랑, 웃어른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자애와 동기간의 우애를 회복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같은 가족사랑이 그동안 잊혀져왔던 ‘효문화’를 되살려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정신문화 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소망과 신념도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적지 않은 독자들께서 이번 캠페인에 동참해 주셨고, 신문사는 진솔한 감성으로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 20편의 편지를 선정, 요약해서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 농촌여성신문이 올해 초부터 공모한 ‘가족사랑 손편지쓰기’ 공모에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독자들이 감동적이고 진지한 사연을 담아 직접 손으로 쓴 편지들을 보내왔다.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에게 다시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러도 불러도 좋은 울 엄마 사랑한데이…
이제야 말해요…가족 위해 헌신하신 오빠 사랑해요
깐깐하고 고집 센 엄마 잘 모시는 올케 고마워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는 막둥이 편지 쓸 수 있어 다행

 

# 불러도 또 불러도 좋은 울 엄마
   홍성희(대구 달성군)

태어나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편지같네, 나이 오십줄이 넘어도 엄마에겐 높임말 하기가 어렵네. 엄마 미안해 내가 이렇게 편지를 보내도 읽기가 힘들겠지.
엄마가 요즘 한글을 배워 세뱃돈 봉투에 비뚤비뚤하게 써내려간 편지에 난 눈물을 흘렸지 “자은 딸도 건강하고 엄마는 내 막둥이를 사랑하고 있다. 새해도 복 많이 밭으라 자은딸 화이팅”이라고 써주었지. 난 엄마가 넘 훌륭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었지. 
엄마! 불러도 또 불러도 좋은 울 엄마! 정말 사랑한데이! 내 옆에 오랫동안 건강하게 있어줘. 작은딸이       

 

#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
   최병우(충북 청주시)

흙이 선생님이었고, 햇빛과 친구 삼아 사셨고, 하늘이 신이셨던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
손톱 밑과 발톱 밑이 흙으로 인해 언제나 까맣게 물들어 있던 당신이 새삼 자랑스러워집니다.
당신의 딸로 태어나 이만큼 키워 주시고 자식들의 바라이기였던 당신이 …    <중략> …    머지않아 파릇하게 예쁜 새싹을 틔우며 세상밖으로 얼굴을 내밀겠지요.
당신도 이렇게 다시금 우리들 곁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선물같은 며느리들에게
   이정숙(충남 당진시)

채은, 다혜 엄마야! 너희들이 우리 가족이 된지 벌써 20년이 넘었네. 너희들이 선물처럼 우리 곁에 와줘서 반갑고 변함없이 밝은 표정으로 있어줘서 고마워.
3년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실적에 아버지 쾌유에 도움이 된다며 열차를 타고 식사를 나르며, 빠짐없이 손주들과 병원에 오던 너희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그것이 3년전 일인데 아버지가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와 너희들이 함께 해준 ‘가족여행’은 가장 가슴에 남는 선물이란다. 항상 고맙고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오랫동안 함께하자 우리가족은 ‘행복진행형’이니까. 미선씨! 영미씨! 사랑하나이다.

 

# 나의 버팀목 사랑하는 아들에게
   한승자(경북 상주시)

그러니까 20년 전이 되겠네. 어느날 갑자기 아빠에게 병마가 찾아왔지. 서울 병원을 오가면서 제발 애들 아빠 병을 고쳐달라고 수없이 기도하고 또 빌었지. 그렇지만 아빠는 5년이라는 기간 병마와 싸우다 우리 곁을 훌쩍 떠나더구나.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너희 둘을 잘 성장시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엄마라는 이유로 앞만 보고 열심히 일을 했단다. 너희 둘이 착하고 성실하게 성장해 주어서 엄마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지금 너희 아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허튼 생각도 해 보지만 나의 옆에는 나의 버팀목으로 우뚝 서있는 아들이 있으니까 내 마음 채워지고 흐뭇해. 나의 버팀목 아들! 사랑해!

 

# 가족 위해 헌신하신 오빠!  사랑합니다!
   박명주(경기 화성시) 

1960년대에 태어난 우리 4남매. 부모님은 지극정성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하셨지요. 오로지 먹고 살고 학비 대시느라 힘드셨지요. 언니는 23살 때 시집을 갔고, 나와 막내 대학등록금 때문에 오빠는 학업을 중단하고 가게일 돕느라 몸이 부숴지도록 일했지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오빠는 회사 취직하고 월급 타서 부모님께 내놓으며, 독학으로 정비일을 배우셨지요. 오빠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비 자격증으로 공무원 임용되어 한시름 덜게 되었지요. 열심히 일해 오빠도 가정 꾸리고 두 여동생 공부 마치는데 일조하셨지요.
지금도 은혜 잊지 않아요! 정작 오빠 앞에서는 표현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학업 희생하며 가족위해 헌신하신 오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히 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

 

# 보고 싶고 그리운 형님!
   임영수(전북 부안군)

그이를 만나 처음 인사드리러 간 날 담장에 피어 있는 장미꽃을 꺾어 테이블 위에 소담스럽게 꽃아 놓았던 형님. 형님은 우리 집안 맏며느리로서 기제사에 명절 상차림을 도맡아 하시면서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셨지요. 형님은 시숙님이 쓰러지시고 불편하신 시숙님의 수족이 되어 8년간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셨습니다. 부모같은 시숙님을 잃은 후 저희 동생들은 허탈해하고 있는데 형님마저 한 달만에 가버리시니 저희는 너무도 괴롭습니다.
형님, 텅빈 집에서 혼자 쓰러지시고 그 긴 시간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셨어요? 전날 통화까지 한 형님의 목소리가 귓속에 남아있는데 어떻게 잊고 살아야 합니까?
형님, 너무도 빨리 주님 곁으로 가셨지만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편히 잠드세요. 고맙다는 인사할 시간도 없이 가버린 무정한 형님께.                          

 

# 사랑하는 막둥이에게
   제갈향덕(전남 신안군)

아빠를 만나 살아온 50년 세월. 우리 큰아들, 큰딸, 작은 딸, 막내아들 4남매를 두었구나.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라고, 섬남자를 만나 섬사람으로 남게 된 부모를 둔 너희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허리협착증으로 서울에 치료받으러 다닐 때 서울에 그 많은 빌딩과 아파트를 볼 때마다 ‘내가 진즉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으면 저 가운데 내 몫도 하나쯤 있을 텐데…’ 하는 회한도 있었단다. 
엄마 나이 서른여덟에 늦둥이로 태어난 우리 막둥이를 볼 때면 늘 마음이 짠하다. 부모와 떨어져 바다 건너 중국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치고 이제 상해 아가씨와 결혼해 열심히 돈 벌고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쉬게 되었구나. 아버지와 나는 막둥이 보러 가려고 중국비자까지 받아 놓고도 코로나 때문에 포기하고 걱정만 했는데 농촌여성신문에서 가족에게 손편지를 써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글을 통해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사돈 어른신들과 서로 양쪽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늘 건강하고 행복해라. 사랑한다. 엄마가.

■ 가족사랑 손편지 당선자 명단

박명주(경기 화성시) 박태진(경기 의정부시) 유남종(강원 원주시) 이금례(전북 임실군) 이영순(경북 경주시) 이정숙(충남 당진시) 이춘화(충남 태안군) 임영수(전북 부안군) 전순자(충북 청주시) 전안성(전북 임실군) 정경희(경기 의정부시) 정원숙(전남 영광군) 정점숙(경북 김천시) 제갈향덕(전남 신안군) 조성희(경북 상주시) 최병우(충북 청주시) 한상섭(강원 영월군) 한승자(경북 상주시) 홍성희(대구 달성군) ○미선(경기 화성시) 이상 20명

 

■ 이달의 손편지

   
▲ 부모님의 생신날 온 가족이 시골집에 모였습니다. 사진 오른쪽 끝이 필자입니다.

제 평안의 원천이신 아버님께 
                                                전안성(전북 임실)

어릴 적엔 눈빛 하나로 저를 제압하시던 아버님
이젠 양치질마저도 아들에 의존…서글픔 밀려와

차가운 삭풍이 가고 어느덧 샛바람이 살랑살랑 온기를 품고 다가 왔네요!
봄은 농민 맘을 설레게 하고, 새 생명이 자연에 생기를 불어 넣듯이 이번 봄엔 아버님의 오랜 지병도 씻은 듯 나아 삶에 활력을 넣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농업을 천직으로 아시고 80여년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그간 고된 농사일로 몸이 망가져 결국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현실이 이 아들은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답니다.

수술후 3주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상을 지키면서 아버님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답니다. 어릴 적엔 매를 들 필요도 없이 훈계 한마디로 저를 제압하실 정도로 무섭고 엄한 분이셨는데, 이젠 반대로 양치질 하나까지도 저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해야 할 정도로 어린애가 되셨고, 병실을 잠깐 비워도 애타게 저를 기다릴 정도로 자그마한 일까지 제게 의지하는 아버님을 뵈면서 가슴속 깊이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젊은 날의 아버님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네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날이 무척 추운 겨울날 이제 갓 새끼를 낳은 엄마 염소의 수염에 생겨난 고드름을 녹여준다며 화로를 가져다 불을 붙이다가 헛간에 불이 붙어 엄마 염소도 죽고 안채까지 불이 번지려던 찰나 마을 사람들이 겨우 불을 껐던 일이 있었을 때, 저는 아버지께 죽도록 맞을 줄 알았는데 뒤늦게 오일장에서 돌아오신 아버님께선 아무런 말씀 없이 “몸 안 다쳐서 다행이다”라며 위로해 주셨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함께 새벽기도를 하며 객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 하나 하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무뚝뚝하셨던 아버님이었지만 전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 무척 좋았답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을 되찾으신 후 아버님께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제3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시길 이 아들은 응원합니다. 노년엔 무엇보다도 건강이 제일이니 생활체조와 걷기운동도 빼놓지 말고 매일 하셨으면 합니다.
어렸을 땐 부모님께서 저의 보호자이셨지만. 이젠 제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언제나 곁에서 부모님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늦춰 보려고 합니다. 이젠 이 아들만 믿고 의지하며 여생을 천천히 즐기셨으면 합니다.

건강상태가 많이 좋아져 며칠 있으면 퇴원하시겠지만 이젠 농사일에 대한 욕심 비우시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여유 있는 행복한 삶을 누리시면서 더욱 건강 챙기셔서 오래오래 저희들과 함께 하는 건강한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아들 전안성이 아버지 전덕길에게 행복을 기원하며 올립니다.

 

<알려드립니다>
농촌여성신문이 ‘효문화 되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펼치고 있는 ‘가족사랑 손편지 쓰기’ 캠페인은 독자 여러분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연말까지 지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손편지 쓰기에 관심과 호응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번에 당선되신 독자 여러분께는 5월말까지 소정의 선물을 댁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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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webmaster@r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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