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7)

-‘요즘 집에 들어가면 동생들이 언니 몸에서 도나스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어디서 맛있는 도나스를 혼자만 먹고 사오지 않았느냐고, 언니는 얌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나는 내 몸에서 풍기는 이 도나스 냄새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도나스 냄새가 2년 동안 라면공장에서 일한 탓으로 몸에 배어든 라면 냄새라는 것을 동생들이 알면 웃을까?…’

월간 <샘터> 창간호(1970년 4월호) 80~81쪽에 실린 <도나스 냄새>라는 제목의 독자수필 머릿부분이다. 글쓴이의 한자 이름과, 일터 현장에서 찍은 흰 위생복 차림의 글쓴이 사진을 싣고, 글의 끝부분에는 ‘삼양식품 도봉공장 포장부 반장’이라는 글쓴이의 직함을 달았다. 글의 제목 옆에는 ‘-식생활 혁명의 한 역군이라는 보람을 느끼며’라는 부제를 붙였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며 라면공장에 다니는 한 생산직 여성(여공)의 거짓없는 생활상과 생각을 소개한 이 글을 읽노라면, 왠지 가슴 짠해지는 연민을 누를 길 없다. 몸에 배인 라면냄새를 ‘도나스 냄새’라는 동생들 이라니… 그 모습은 1960~70년대 가난했던 이 땅의 대다수 우리들의 누이 이자 동생들 모습 이었으니까.

월간<샘터>라는 잡지는, 애초부터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위안을 주던 ‘고향의 샘물’을 작정하고 생겨났다. 이 <샘터>가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49년 만이고, 전체 통권 598호째다. 이유는 ‘90년대 후반부터 누적돼 온 적자’ 탓 이란다.

두 손을 마주 펼치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4×6판)의 <샘터>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월간으로 창간된 것은 1970년 4월이다. 지금의 김성구 발행인 선친인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이 의원시절이던 1965년, 국제기능올림픽 준비를 맡으면서, 이 대회에 참가한 젊은 기능공들에게 용기와 보람을 불어넣어 주자는 고민이 창간의 불씨를 당겼다. 당시 김재순 발행인은 창간사에서, “거짓 없이 인생을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책값은 “담배 한 갑 보다 싸야 한다”는 것이 부동의 원칙이 됐다. 누구나 부담없이 사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창간 당시엔 100원, 현재는 3500원)

이 작은 월간지를 통해 소설가 최인호의 연작소설 ‘가족’(35년간 402회 연재), 법정스님의 ‘산방한담’(1979~96년), 시인 이해인 수녀의 ‘꽃삽’, 정채봉 작가의 동화, 피천득·장영희 교수의 영혼을 적시는 명수필들, 그리고 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이들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슴에 보듬을 수 있었다. 뿐이랴. 구로공단의 통근버스에 오르는 누군가에게는 배움의 열망으로 흔들리던 마음에 고향같은 위안을 주던 매체이기도 했다.

김성구 발행인은, “‘아무리 처지가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보다 더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월간 <샘터>의 발행 가치를 지속시킬 수만 있다면, 도움을 받거나 <샘터> 판권을 넘길 뜻이 있다”고 했다. 진정 그 뜻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내가 만드는 행복, 함께 나누는 기쁨’이란 슬로건이 새로운 기운으로 다시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세월은 많이 흐르고, 세상 또한 많이 변했어도 <샘터>의 발행가치는 아직도 유효하므로…

 

※급 추신: ‘월간 샘터’가 각계 성원에 힘입어 무기한 휴간 결정을 백지화하기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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