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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기사승인 2019.10.07  16: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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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벼, 콩, 들깨 등
수확하지 못한 곡식이
바닥에 쓰러진다.
농부의 한숨이 깊어진다."

추석 무렵에 불어닥친 태풍 ‘링링’으로 과수원 배 40%가 떨어졌다. 그리고 연이은 태풍 ‘타파’로 큰 피해는 아니지만 바람에 한 번 시달린 배들이 낙과를 했다. 여기 괴산은 일조량이 많지 않아 남은 만생종(신고, 감천)은 해마다 10월 초에서 중순까지 딴다. 그런데 또 다시 태풍 ‘미탁’이 올라와 개천절에 우리나라를 통과했다. 남해안과 동해안은 말할 것도 없고 내륙 중심까지 과수는 물론이고 황금들판에 익어가는 벼, 콩, 들깨 등 아직 수확하지 못한 곡식들이 바닥에 쓰러져 농부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진다.

기상청은 태평양에서 18개의 태풍이 발생해서 올해 우리나라로 올라오는 태풍이 그 중 7개라고 하는데, 기상전문가들은 태풍 패턴이 변화하는 배경으로 지구온난화를 꼽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기후환경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사람이 어쩌랴~” 남편은 남은 배라도 다 따야한다며 서둘러 배밭으로 내려갔다.

나는 태풍으로 난파한 한 소년의 표류기가 생각났다. ‘얀 마텔’이 쓴 ‘파이 이야기’(life of Pi)인데, 주인공 ‘파이’는 열여섯 살 인도사람이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형과 함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70년 인도상황이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했고, 캐나다로 가는 도중 화물선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고 만다.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보트엔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그리고 벵골 호랑이가 올라타 있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은 하이에나를 호랑이가 잡아먹자 ‘파이’는 호랑이와의 절대절명의 대치 상태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호랑이를 길들여 나가야함을 깨닫는다.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에서 227일을 표류하다 멕시코항구에 도달한다는 이야기다.

2002년에 ‘맨 부커’ 상을 수상한 이 책은 1부, 2부, 3부로 나뉘어 400페이지의 분량이 그 무게감을 말하지만 2부(태평양)가 책의 중심부다. 난파한 화물선에서 살아남은 파이와 호랑이의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묘사돼 읽는 나도 함께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이는 강인해지고 생존을 위해 계획도 세우고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를 조련하기 시작했다. 구명보트에 뗏목을 만들어 달고 고기를 낚고 바닷물로 증류수를 만들며 안정적인 항해를 했으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은 한순간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파이’는 배고픈 호랑이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공급해야 했고 그것이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됐다.

우리도 인생 여정 가운데 정말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벵골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평생을 괴롭히는 ‘병’일 수도, ‘돈’일 수도, ‘관계’일 수도, 나만 아는 ‘무엇’일 수도 있다. 소년 ‘파이’는 신(神)을 찾는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아무리 육십 평생을 살았다 해도 나 역시 오늘은 내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처음이다. 생명(生命). 살아 있으라고, 살아내라는 신의 명령어가 아닌가! 오늘 하루도 막막한 안개 속에서 태풍의 북상 소식을 듣는 나는 소년 ‘파이’가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드린다.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우리의 벵골 호랑이도 잘 조련돼서 ‘파이’처럼 서로 함께 잘 살아가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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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webmaster@rwn.co.kr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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