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96)

5년 전인 2014년 늦가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었다. ‘동유럽의 장미’, ‘동쪽의 파리’, ‘다뉴브의 진주’ 등의 수식어로 불리는 부다페스트는, 체코의 프라하와 함께 동유럽 관광의 필수코스로 돼 있다.

독일에서 발원해 중·남동부 유럽 18개국을 끼고 흘러 흑해로 가 ‘유럽의 젖줄’로 불리는 다뉴브강 2840Km 중 28Km가 부다페스트를 끼고 돈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강기슭 오른쪽은 왕궁ᆞ국립박물관 등 고대 역사문화유적이 있는 부다지구, 맞은편인 왼쪽은 신도시 상업지역인 페스트지구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다페스트 관광의 절정은, 뭐니뭐니 해도 다뉴브강 유람선을 타고 강의 양쪽으로 꿈결같이 흐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만끽하는 일이다. 구시가지의 역사유적들과 국회의사당 등 신시가지의 건조물들이 조명을 받아 동화 속의 얼음궁전처럼 황금색으로 빛난다.

그러나, 다뉴브강 유람선 뱃전에 서면 젊은 연인들 가슴을 잡아흔들었던 선율이 있었으니…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우울한 일요일)>였다. 그래서 한번쯤 낯선 도시에서의 사랑도 꿈꾸어 보는 곳이 바로 부다페스트다. 헝가리의 무명 피아니스트였던 레조 세레스란 이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이 피아노곡은, 그 우울한 분위기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1933년 이 곡이 부다페스트에서 발매된 이후 8주만에 이 곡을 듣고 무려 18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곡을 작곡한 레조 세레스 역시 19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이 곡을 ‘자살의 찬가’ 혹은 ‘죽음의 송가’라고도 불렀다. 한참 후에 이 곡을 주제로 한 같은 이름의 소설이 나오고(1988년), 영화화 돼(1999년)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끌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수입개봉 됐었다.

‘우울한 일요일/ 잠조차 들지 못하고 / 내 삶에 셀 수 없이 가득한 어둠 만이 다정해라 //…// 내 마음과 나는 이제 / 모든 것을 끝내리라 마음 먹었네.’ -<글루미 선데이> 가사(부분)
저 옛날 ‘죽음의 송가’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그 다뉴브강 다리 위에서 이젠 그 강에서 희생된 이국인들의 영혼을 달래며 서툰 억양으로 부르는 <아리랑>이 울려퍼진다. 시작은 지난 5월31일 에스 엔 에스(SNS)에 올라온 하나의 게시물에서 비롯됐다…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지난 5월29일 밤(현지시각) 유람선 충돌사고로 죽은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자!’는 한 시민합창단의 제안이었다. 악보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울었다.

뿐이랴. 사고 현장의 각종 구조작업 참여 자원봉사자 620여 명이 모두 사고 현장에서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에서 출퇴근 하며 헌신하고 있다는 특파원들의 보고를 듣자니, 이런 국민들의 우환은 아랑곳 없이 날이면 날마다 하는 일 없이 패로 나뉘어 정쟁만을 일 삼고 있는 이땅의 ‘선량들’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부끄럽다… 아, 그러나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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