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음식물 건조박 비료 활용 제동…몸 사리기 비판

▲ 피마자박을 원료로 쓰는 비료포대에는 개와 고양이 폐사위험과 어린이의 접근을 막으라는 문구가 있지만 농민들을 위한 위험문구는 없다.

업체 “고시 늦어지면 4월에 음식물쓰레기 대란 올 것”
건조박 오해와 일부 일탈 침소봉대로 계획된 일정 차질
부처-이해관계자 줄다리기하는 사이 농민건강 뒤로 밀려

리신 함유한 '피마자박'
음식물에 쓰레기가 붙는냐 마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는 크다. 최근 일부 언론의 남은음식물 건조박(이하 건조박)을 고급비료, 즉 유기질비료로 둔갑해 몰래 섞어 팔면서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해왔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보도 이후 농촌진흥청이 개정된 ‘비료공정규격설정 및 지정’ 고시가 늦어지면서 수도권의 남은음식물 처리업체들은 건조박의 판로가 막혀버렸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국내 유기성 폐자원의 재활용을 위해 건조박과 가공계분을 혼합유기질, 유기복합의 원료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개정 고시안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지난 12일 남은음식물 처리업체들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입장을 전달했다. 업체 관계자는 일부언론의 보도는 건조박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음식물쓰레기를 유기질비료 원료로 쓴다는 단편적인 시각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건조박 처리가 계속 미뤄지면 4월에는 음식물쓰레기 대란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건조박은 하루에만 260만 톤에 달하지만 해결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건조박은 유기질비료 원료로 전량 수입하고 있는 피마자박(아주까리박)을 대체하기 위해 업체들이 농진청에 개정의견을 개진했고, 지난해 10월 비료공정규격 심의회에서 적합한 것으로 통과됐으며, 지난해 11월13일 행정예고를 한 바 있다.

우선 피마자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피마자에는 리신(risin)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함유돼, 이를 원료로 한 비료를 먹은 개와 고양이가 잇따라 폐사하고, 비료공장 인근 주민 30%가 암에 걸린 사례들이 알려되면서 이를 대체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건조박은 농민건강을 위협하는 리신이 없고, 피마자박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피마자박의 연간 수입량은 45만 톤으로 kg당 180원인 반면, 건조박은 kg당 70원으로 25만 톤을 대체한다고 가정했을 때 수입대체효과는 27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업체는 주장했다. 또한 연간 50만 톤이 유통되는 유기질비료 기준으로 한 포대(20kg)당 농민 부담이 1100원 줄어 건조박 유통 시 건강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 남은음식물 건조박(사진 왼쪽)과 피마자박(아주까리박) 비교 모습.

독성물질 함유한 비료 원료는 손 놔
이런 이점 때문에 농진청도 혼합유기질과 유기복합에 건조박을 비료원료로 사용하는데 찬성의견을 밝혔었고, 업체들도 보통 20일이 소요되는 행정예고를 고려해 지난 연말이면 개정 고시안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언론보도와 유기질비료 원료로 이용되는 축산분뇨 처리업체와 습식분말 업체들이 영역침범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넉 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는 건 몸 사리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농민뿐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에 큰 불편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수도권의 경우 남은음식물 처리업체가 80여 개가 있는데, 민간의 처리 비중은 약 60%에 이른다. 민간에서 건조박 판로가 막혀 음식물쓰레기를 받지 않게 되면 지자체가 모두 떠안아야 하지만 지금도 이미 포화상태로 더 이상의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게 현재 입장이다.

농진청은 업체 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비료를 사용하는 농업인에 대한 의견수렴 후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고, 건조박은 현재 가축분퇴비와 퇴비원료로 사용가능하지만 유기질비료 원료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건조박이 쌓이는 것 역시 불법유통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입장문을 지난 11일 내놨다.

지난 2월11일 농진청과 농식품부가 농업인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한 이후, 지난 14일 3월 중으로 고시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고령화된 농촌에서 리신을 함유한 유기질비료 원료가 피부나 호흡기로 흡입해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담당부처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은 분명 문제다.

농민들에게 비료원료로 맹독성 리신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담당부처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현재 비료포대에는 개와 고양이 섭취 시 폐사할 수 있고, 어린이 손에 닿는 곳에 놓거나 보관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살포하는 농민에게는 어떤 안내문구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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