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북 순창‘설산소리 농원’이진 대표

▲ 이진 대표와 남편 박완빈씨가 건강하게 재배한 표고를 들어보인다.

전남 곡성과 전북 순창 경계인 ‘설산 기슭’에 자리
유기농기능사·마을해설사·산림치유사·인성상담사까지
마을 이장까지 맡아 주민 편의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

설산(雪山), 눈이 온 것처럼 온 산이 하얗게 비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설산은 전북 순창군 풍산면과 전남 곡성을 품어 경계를 나눈다. 해발 526m의 설산은 오르는 내내 온통 하얀 바위들이 펼쳐지며 순백의 기품을 더해준다.
이 설산을 오르다보면 아로니아 향내 그윽한 ‘설산소리 농원’이 반긴다. 농원 주인장인 이진 대표(여·51·전북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483-1)는 원래 전남 광주가 고향이다.

“귀농을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어요. 특히, 순창에까지 와서 농사를 지을 줄은 몰랐죠. 어찌 보면 운명인 것 같기도 하고, 설산이 나를 부른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설산은 이진 대표의 든든한 뒷배다. 귀농으로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설산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
“남편이 참 순한 사람이에요. 결혼 초부터 농사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농을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별수 없이 남편을 따라나선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설산소리 농원의 표고

이 대표의 설산소리 농원은 순창 풍산면 설산 자락 39600㎡와 적성면 15000여㎡로 제법 넓다. 아로니아, 오디, 블루베리, 두릅, 매실, 대추, 표고 등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한쪽 밭에서는 들깨, 참깨, 고추 등을 심어 당장에 급한 자금을 마련하는 형태다.
이 대표는 결혼 전 광주에서 줄곧 살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병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지인의 소개로 남편(박완빈·53)을 만났다. “어쩌면 결혼하는 순간부터 지금의 삶이 예견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결혼을 서른 살에 했으니까, 조금 늦었나요. 남편은 전주가 직장이고, 저는 광주였어요. 그래서 중간쯤인 장성에 신혼집을 얻고 직장을 오가는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 블루베리, 오디 등이 가득 반겨주는 설산소리 농원 전경

장성에서 광주와 전주를 따로 오가는 결혼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날 무렵 남편이 다시 귀농얘기를 꺼냈다. 결단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함께 귀농을 해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기로 했다. 2013년 남편의 고향인 순창으로 귀농은 그렇게 시작됐다.
“남편의 고향인 적성면에 부모님의 땅과 풍산면에 땅을 마련해서 평소에 생각했던 아로니아와 블루베리, 오디 등을 심었는데, 가꾸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어요. 거기다가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수확하기까지는 3~5년씩 걸리는 것들이어서 당장에 돈을 마련할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들깨, 참깨, 고추, 고구마 등 1년생 작물을 심어 급한 자금을 조달했지요.”

“2013년도에 블루베리 같은 작물들이 인기가 높았어요. 너도나도 달려들어 재배를 했는데, 몇 년 지나서 생산할 때가 되니 가격이 폭락했어요. 주변에서 가공식품으로 만들라고 해서, 외부에 의뢰해서 만들었는데, 가공품도 역시 가격이 형편없는 것은 물론이고 판로도 없어서 고생을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이렇듯 농사는 이 대표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선배 농사꾼에게 묻고 전문 교육기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농업 관련 교육은 다 받은 것 같아요. 순창군농촌혁신대학, 순창군농업기술센터 친환경농업교육, 농장디자인 아카데미 등 많이 찾아다녔지요.”

농업 관련 자격증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갖춰나갔다. 유기농기능사, 산림치유지도사, 인성심리상담지도사, 마을해설사 등 많은 자격증들이 귀농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랑한다.
“귀농 전부터 들었던 얘기지만 나중에 더 실감나게 느낀 것입니다. 농사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고, 많은 지식을 쌓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교육에 참여하고, 각종 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은 이 같은 네트워크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대표는 마을 이장까지 맡았다. 주민의 대표로서 쉬는 날도 편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오늘도 동분서주 ‘설산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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