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12주년 특집 - 생활개선회 60년…농촌 생활주거환경 어떻게 변해왔나?

▲ 아궁이에 불을 때서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던 과거 재래식 부엌(좌)과 농촌여성 건강증진과 집안일을 남성과 분담이 가능케 했던 개량된 입식 부엌(우)

입식부엌 개량, 노동시간 절약·농촌여성 건강 증진
메탄가스 이용시설 설치, 친환경 에너지 사업 시초
고향 주거환경 개선운동, 생활개선회 중심으로 전개

6·25 전쟁 이후 농촌의 주거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다. 집 밖의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먹는 물은 공동우물이나 개천에서 떠다 먹었다.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은 요원한 비위생적인 주거환경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부엌은 쪼그려 앉아 아궁이를 때며 난방과 식사를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생활개선회 이전 생활개선구락부로 활동을 시작했던 1958년 농촌의 전형적인 주거환경은 대부분 그러했다. 이때 생활개선회원과 농촌진흥청 생활지도사는 주거환경 개선에 혁혁한 공을 함께 세운 이들이다. 1960년대 개량온돌, 연료절약 아궁이, 개량변소 등의 환경개선을 추진했고,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 아래 입식부엌 개량, 메탄가스 이용시설 설치 등을 함께했다. 1980년대는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농가 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생활개선 종합시범마을 사업이 대표적으로 추진됐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전, 외국의 주거문화 영향을 받은 도시와는 달리 농촌은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형적으로는 경사가 심한 곳은 대지 조성이나 농작업 활동상 불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농가주택은 농경지의 확보가 용이하며 양호한 배수와 일조, 방풍이 좋고 아늑한 곳에 입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통적인 농가주택이 갖는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첫째, 농가주택은 가족노동 중심의 농업성격상 주택내부에 농작업 공간이 함께 있어 쾌적하지 못하며, 둘째, 주택규모가 협소하고 방수가 부족하고, 셋째, 흙바닥에 높낮이가 있으며, 급배수 설비가 없는 부엌이 비능률적이며 비위생적이다. 넷째, 변소가 멀고 구조가 비위생적이며, 다섯째, 농가주택의 구조체 즉, 목구조와 흙벽체와 초가지붕은 비내구적이며 비내화적이다. 여섯째, 급배수설비, 난방설비, 온수공급시설 등이 미흡하며, 목욕공간이 없다는 것 등이다.

변화된 부엌에서 새로운 문화 만들다

▲ 지붕과 굴뚝의 개량전·후

전통적 농가주택은 일반적으로 안방과 마루, 건넛방, 부엌으로 구성돼 있는 안채와 거주용 방과 농작업에 필요한 비주거 기능이 복합된 바깥채와 외양간, 창고 등의 건물로 분리돼 있었다. 우리네의 부엌은 ▲아궁이와 화덕 ▲석유풍로와 연탄 ▲가스레인지 ▲전기레인지의 변천사를 거쳤다.

전통적인 부엌은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하는 곳이다 보니 부엌을 방 안에 둘 수 없었다. 아궁이 위에 솥을 걸어두고, 나무로 불을 때 밥을 짓고, 화기(火氣)가 구들장을 통해 방을 따뜻하게 하는 구조였다.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 마당이나 마루를 지나 방으로 옮기는 일은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그을음이 부엌을 시작으로 집안 가득히 퍼지면서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열악했다. 특히 부뚜막의 높이는 어른 무릎 정도로 여성들은 항시 구부정한 자세로 일해야만 했고 그래서 전신의 통증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생활개선회원과 생활지도사들이 주축이 돼 입식부엌개량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개량사업을 통해 부엌에는 수납장, 조리대, 개수대, 펌프, 낮은 식탁이 설치됐다.

농촌생활발전중앙회 오승영 부회장은 그 당시를 “부엌을 입식으로 개량하는 사업은 여성의 허리통증 완화, 동선 최소화를 목표로 직접 높이와 거리를 무수히 자로 재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면서 “그 결과 당초 목표로 정한 것들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남성들도 부엌 출입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집안일을 분담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부엌이라는 공간의 하드웨어가 개선되니까 집안일을 분담하는 소프트웨어까지 생겨난났다. 적지 않은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통일된 구조로 부엌개량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이순선 부회장은 “1980년대까지 제주도 애월읍에서는 연탄을 쓰지 않고 아궁이와 구들장을 그대로 두고 부엌개량을 한 사례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농가주부의 가사노동을 절감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인 식생활을 할 수 있는 부엌개량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뒤이어 변소와 목욕실 개량 사업을 통해 주거의 편이성과 거주생활의 쾌적성을 향상시켰다.

분뇨 활용한 메탄가스 이용, 경제성 없어 좌초

▲ 분뇨를 모으는 탱크를 묻고 그 위에 목책으로 덮개를 씌우는 메탄가스 이용시설 시공 모습

1970년대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메탄가스 이용시설 설치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주된 목적은 과거 나무를 베 연료로 쓰던 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닭, 소, 사람의 분뇨를 이용해 메탄가스를 만들어 집 밖의 분뇨탱크에 보관한 후 부엌의 곤로에 파이프를 연결해 취사를 해결했다.

경북농업기술원 정종기 前 기술보급국장은 “이 사업은 농촌연료 해결과 산림녹화, 축산장려, 채소청정재배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며 “분뇨탱크는 8㎥(가로 2m, 세로 2m, 높이 2m)로 경제성은 연탄의 60%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분뇨를 모으고, 탱크를 묻고, 파이프를 연결하고, 여자라면 할 수 없던 일들을 억척스럽게 해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한국생활개선강원도연합회 임동숙 회장은 “그 당시 마을에 메탄가스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 생활지도사 선생님들을 ‘똥까스 아가씨’로 부를 정도로 이곳저곳을 누볐던 게 생각난다”면서 “하지만 화력이 세지도 않고, 일정치도 않아서 오래 지속되지 못해 아쉬웠다”고 증언했다. 임 회장의 말처럼 이 사업은 실용성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종료되고 말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축분뇨를 활용한 바이오가스를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사업화해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고향 주거환경 개선, 생활개선회가 주도
1991년 당시 농촌진흥청 생활개선과장으로 재직했던 본지 임평자 사장은 ‘고향 주거환경 개선돕기운동’에 대한 일화를 언급했다. 농사일과 집안일에 시달리는 농촌여성을 돕기 위해 부엌, 화장실 등을 현대식으로 고치자는 이 운동은 농촌에 고향을 둔 도시사람과 기업체가 중심이 돼 현금, 싱크대를 비롯한 물품을 기탁 받아 주거환경을 개선했다. 부엌을 입식으로 개선해 농촌여성들의 취사시간이 20~40% 가량 줄어들었다는 조사도 있다.

임평자 사장은 “농촌여성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도시의 부엌과 화장실일 정도로 열악했고, 대상농가만 약 50만 호에 달했다”면서 “정부의 융자만으로 감당이 안 돼서 민간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자신의 연고가 있는 고향의 농가를 지정해 기탁금을 보내오고 심지어 일본과 미국의 해외동포들도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높았으며, 그 중심에 생활개선회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새마을부녀회에서 독립한 생활개선회는 농촌지도자회 산하의 생활개선분과로 소속돼 있었다. 그래서 이 운동을 주도한 단체가 생활개선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원들과 관계공무원 외에는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농촌 특유의 자연환경, 공동체 문화 등 다양한 차원에서 쾌적성을 주는 어메니티가 주목받았다. 더 이상 주거환경개선에만 국한하지 않고 어메니티 자원을 새로운 농촌 공간으로 변모시키는데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활개선회도 농업의 공익적 가치 제고와 함께 농촌다움, 경관미, 정주편리성 등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는 주역으로 생활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됐다. 또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물심양면으로 돌보는 봉사활동 형태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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