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60)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겨울날씨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말이 대체로 들어맞아 전통 농사일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대략 보름에 한 번씩 돌아오게 기후변화의 표준점을 삼은 절기(節氣)도 맞춤 그대로여서 더할 수 없는 일상의 가늠자가 됐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전도에 지역별로 작물 특산지를 동그랗게 표시해 놓고 공식처럼 달달 외우게 했다. 대구=사과, 나주=배, 소사·조치원=복숭아, 제주=귤, 금산=인삼…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이렇듯 붙박이 같았던 작물 재배지가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특산지 개념도 없어졌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 때문이다. 주요 농산물의 주산지가 남부지역에서 점차 북부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최근 공개한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복숭아·포도·단감·감귤·인삼 등 주요 농산물의 주산지가 과거 남부에 위치한 특산지역에서 점차 북부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날 날씨가 추워서 농작물 재배가 거의 불가능했던 한반도 북부지역, 이를테면 강원도 산간지역에서도 과일이며 기타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날씨가 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주요 과일의 재배지역 북상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인 사과의 경우, 과거의 주산지였던 대구, 영천, 경산, 경주 등의 재배면적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위도 36~37도에 위치한 청송, 안동, 영주, 충주, 제천, 예산 지역에 재배면적이 집중되면서 강원도 정선·영월·양구·고성 등 산간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복숭아 역시 1970년대 주산지였던 경북지역에서 1990년대 이후 충북·강원지역으로 재배면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 주산지가 경북지역에 집중돼 있던 포도도 최근엔 강원 영월, 경기 가평·화성, 경남 거창, 전북 무주 등 비교적 생육기 기온이 낮은 지역의 재배면적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1970년대 오로지 제주에서만 재배가 가능했던 감귤은 2000년대에는 경기 이천과 충남 천안, 2015년에는 전남 고흥, 경남 통영으로 재배지가 확산됐다.

통계청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 되면 21세기 후반에는 강원도 산간지대를 제외한 남한의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 사과의 경우 80년 후에는 강원도 산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저 남극의 세종기지에서처럼 식물공장에서 수경재배로 기른 녹색채소와 과일을 사먹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의 거리 거리마다 야자수가 빌딩숲 사이로 널따란 두팔을 활짝 벌리고 늘어설 날도 꿈이 아닌 현실로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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