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55)

1994년 7월8일, 북한의 김일성이 돌연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그때 나이 82세. 그 누구도 그가 그렇게 일찍 가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100살은 거뜬히 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이 세상에서 몸에 좋다는 것은 온갖 것 다 구해 먹는다, 젊은 피를 수혈 받는다,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살을 섞으며 기를 듬푹듬뿍 받아가며 자신만의 천년왕국에서 영생 불사를 꿈꾸던 그였으니 100살이 문제였겠는가. 이런 그의 회춘 무대에 등장한 것이 기쁨조다.

그의 아들 김정일이 1975년 무렵, 후계를 꿈꾸면서 아버지인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고도 하고, 김일성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북한 전역에서 미모를 갖춘 여성들을 선발해 김일성 호화별장인 특각에 배치한 것이 시초다. 그러니 기쁨조는 김일성 ㅡ김정일 ㅡ김정은에 이르는 3대 세습정권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쁨조가 최근 남한에서 #미투운동에 편승해 인터넷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쁨조 주체는 우리나라 양대 항공사의 하나인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박삼구 회장. 박 회장의 ‘여승무원 희롱에 대한 고용노동부 민원제기 운동을 시작한다’는 제목의 글에 대한 조회수가 1만회를 넘어섰다. 이들은 한결같이 박 회장의 부적절한 스킨십을 지적했다. 급기야는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서서 박 회장의 #미투갑질을 한입으로 성토하기 시작했다. ㅡ “우리는 박 회장의 기쁨조가 아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매달 첫 번째 주 목요일 오전 7시30분 강서구에 있는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승무원 격려행사’를 갖는다. 여승무원들이 본사 1층 로비에서 정렬해 대기하다 손뼉치며 박 회장을 맞이한다. 박 회장에게 달려가 팔짱을 끼고 반기며 “회장님,이제 오셨습니까? 회장님,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회장님 보고싶어 밤잠을 설쳤습니다, 회장님 사랑합니다!~”

등등 승무원 교관들과 회사간부들 지시에 따라 잘 짜여진 멘트가 흡사 영화 속 대사처럼 흐른다. 그러면 박 회장은 덕담을 건네며 악수나 포옹, 어깨를 두드리는 스킨십을 한다는 것. 이렇듯 매달 반복적으로 박 회장 앞에서 누구는 울고, 누구는 안기고, 누구는 달려가 팔짱을 끼어라~ 등의 역할 분담을 교육교관들과 간부들이 공공연하게 짜맞추어 준비 시킨다는 것이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 누굴 위한 기쁨조인가. 그걸 즐기는 이는 또 무엇인가.

회사 측에서는 “매월 1회의 새벽 격려방문 행사는 선대 창업주 때부터 이어온 오랜 현장소통 경영의 일환인데, 오해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구차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야 한다. 72년 전 박 회장의 선친인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나주에서 택시 2대로 시작했던 눈물겨운 창업 때의 초심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래야만 ‘종업원과 함께 가꾸는 기업’이라는 금호아시아나의 경영비전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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