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온 세월 증언

▲ 지난 17일 함안군농업기술센터에 모인 관계자들은 생활개선회 60년사 역사기록물 수집회의에서 활동과정과 관련한 자료들을 내놓으며 그간의 과정을 공유했다.

여성의 자아와 권익향상 이바지한 생활개선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무모했지만 다양한 시도 펼쳐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활개선회 60년사 역사기록물 수집은 오는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난 17일에는 함안군농업기술센터에서 전현직 생활개선함안군연합회원들과 농촌진흥청, 경남농업기술원,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농촌생활발전중앙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에는 생활개선함안군연합회 정용자 초대회장을 포함해 5명의 전직회장들이 함께하는 등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농촌진흥청 이명숙 농촌자원과장은 “무려 60년 동안이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아마 생활개선회가 유일무이하지 않다 싶다”면서 “그간의 땀 흘려 활동한 내용을 후손들에게 전달돼 길이길이 보존될 수 있도록 이번 작업에 힘을 모아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어 함안군농업기술센터 이경희 농업정책과장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생활개선회도 영원한 생활개선회원이라 생각한다”며 “마치 역전의 용사처럼 초대회장을 비롯해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이 과장은 “사진자료들을 모으다보니 밝게 빛나는 청춘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어 훌쩍 지나버린 세월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왕무연 홍보부회장은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선배 회원님들이 이렇게나 자료를 모아주셔서 후배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 이날 회의 때 수집된 앨범에는 생활개선회원들의 추억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64년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는 농촌생활발전중앙회 허심자 경남회장은 “당시 농촌의 부엌은 그을음이 가득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허 회장은 “1983년 일본으로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농촌보다 30년은 앞서있는 모습에 좌절감을 맛본 이후, 10년 만에 그 격차를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또한 생각나는 사업으로 파리떼가 꼬이는 걸 막아 음식보관을 오래하기 위해 철사로 사과 궤짝을 연결하고 천을 덮어 찬장을 만들었던 일, 1미터 높이로 시멘트를 붓고 그 위에 빨간 고무대야로 모양을 낸 싱크대를 만들었던 일 등을 회상하며 오로지 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일했던 시절을 언급했다.

함안군연합회 7~8대 지낸 조순제 회원은 “농사와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내색을 내비치면 남편이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생활개선회를 그만두면 당신 바가지를 더 긁을 거라는 말에 회장일을 적극 후원해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라도 지나고 보니 오로지 행복했던 추억만 남아 생활개선회원으로 일한 시간이 정말 소중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9~10대 회장을 지낸 김순연 회원은 “서울에서 엿을 만드는 걸 보고 생전 처음 엿을 만들어 판매사업을 시작한 일, 쌀 소비촉진을 쌀떡을 만들어 군에서 인정받았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 덕분에 생활개선회가 농촌에서 1등 가는 조직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그간의 활동을 자랑스러워했다.

농촌생활발전중앙회 박정임 경남총무는 “인력충원이 원활하지 않고 예산도 마땅치 않아 혼자 전지에 기초영양군 그림을 직접 그려 마을마다 다니며 교육도 했었다”면서 “1982년 거창에서 4백만 원 예산으로 고사리, 고구마말랭이, 토란 등을 봉지에 담아 스티커를 붙였던 일과 열악한 에너지 사정을 타파하기 위해 메탄가스 설치 등의 일은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하며 돌이켜보면 무모했지만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시절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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