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 농촌여성 #미투 현장

▲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토론회를 통해 ‘미투 운동’에 나선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여성들.

#통역과 상담 활동을 하면서 들은 폭력이나 인권 침해 내용은 아주 다양합니다. 어느 여성은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아 폭력을 당해 몸이 멍든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폭력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외국인등록증과 여권을 남편이 감춰 집에서 못 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 도망을 쳐서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가 됐습니다.(필리핀 이주여성 오혜진씨)

사업주·동료로부터 성폭력에 무방비 노출
피해 이주여성 인권보호대책 마련 시급

최근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남성중심 사회권력 구조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자주적으로 나선 ‘미투 운동’에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농촌에서 이주여성들은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고 있지만 정작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피해에서 이들을 구제해줄 도움의 손길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주여성들은 농촌에서 가사노동, 육아, 영농 등을 일반 여성농업인들과 똑같이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차별과 폭력을 당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을 받고 있다.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미투 운동’에서 조차 신원 불안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이주여성들을 대표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하 센터)는 서울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여성들의 #Me Too’를 주제로 최근 토론회를 진행했다.

센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센터 2곳에 접수된 성폭력 관련 상담 건수는 456건에 달했다. 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2016년 5~8월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대상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64%는 한국인 고용주와 관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토론회에서 이주여성 5인은 센터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 상담과 통역을 하면서 경험한 국내 이주여성들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 실태를 알렸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여성은 “한국의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한데,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다”면서 “만일 성폭력 가해자가 사업주거나 동료인 경우 이주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의 법을 잘 모르는 이주여성이 증거를 모으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대표는 “이주여성들은 성폭력 피해에 노출돼도 임금을 받기 위해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농촌은 고립돼 있어서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사업주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노동자,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등 농촌의 기숙사에서 남녀가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문제점과 기숙사에 잠금장치가 없어 언제든지 사업주나 다른 남성노동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기숙사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이주여성의 이야기, 가정에서 시아버지 혹은 형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주여성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 등 한국사회에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의 어려움이 토론회에서 드러났다.

토론회에서 이주여성들은 ▲이주여성 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성폭력 대책 마련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국내 체류 모든 이주여성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과 창구 마련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알리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 ▲선주민에 대한 다문화 감수성에 기초한 폭력 예방 교육과 인권 교육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한 이주여성은 “이주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문제가 일시적으로 이야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의 관심이 모아져 이주여성들이 다시 오고 싶은 한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여성들은 남성들의 보조자 역할로 안팎의 살림을 책임져왔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주여성들도 힘을 모아 ‘미투 운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 땅의 주역이 될 농촌의 이주여성들도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미투’를 외쳐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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