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농담(農談)<41>

농촌살이는 1년의 반복이다.
봄 다르고 여름 다르고
가을 다르고 겨울은 다르지만
1년은 일란성 쌍둥이 같다.

없는 사람 살기에는 여름이 겨울보다 낫다지만 귀농 여름이 녹록지가 않다. 바깥에 나가면 모기 같은 하루살이가 괴롭히고 방안에 있으려니 덥고 짜증나는 여름밤이다. 동네 쉼터는 문을 닫았고 비닐하우스 참외는 은퇴한 여배우처럼 궁기가 가득하다. 도시에서 살 땐 커피숍이라도 들러 모르는 사람 얼굴들을 쳐다보며 외로움을 달랬었는데 농촌에선 모르는 사람 얼굴마저 그립다.

헌집에 혼자 사는 늙은 개는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데도 쉼 없이 짖어대고,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바람은 눈치 없이 문밖에서 소리친다. 감나무 그림자는 낮이고 밤이고 축 늘어져있고, 달빛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외로움에 지친 수탉은 새벽이고 밤이고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고, 길고양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할매 친구들은 눈이 침침하다며 눈을 감고 귀가 어둡다며 말을 하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다며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이가 빠졌다며 먹기를 주저한다. 친구 같고 어머니 같고 누나 같은 할매 친구들이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모습은 외로움을 더 짙게 만든다. 할매 친구들 덕분에 농사를 배웠고 외로움을 덜었고 혼자 먹는 밥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런 호사 얼마나 갈지 걱정이 한 움큼이다.

부대끼는 세상살이를 피해 선택한 귀농인데 사람이 보배 같다.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인적 드문 여름밤이 길기만 하다. 할매 친구가 밤새 텔레비전을 켜놓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란 걸 이제는 절감한다. 달그락 거리는 밥그릇 소리 대신에 텔레비전을 켜놓은 것이고, 오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리는 대신에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는 것이리라. 나또한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런 터에 ‘한상덕의 농담(農談)’은 많은 위안이 됐다. 한주일 내내 생각하고 한주일 내내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눈이 침침해지면 초록 잎을 보았고 마음이 산란해지면 무작정 걸었다. 자료를 얻기 위해 참외 비닐하우스에 들어갔고 일부러 오일장을 찾아가 꼭 필요하지도 않는 모종을 사기도 했었다.

이제 ‘한상덕의 농담(農談)’과 이별하려고 한다. 농촌살이는 1년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봄 다르고 여름 다르고 가을 다르고 겨울은 다르지만 1년은 일란성 쌍둥이 같아서다.
물론 많이 아쉽다. 헤어짐은 언제나 외롭고 우울하고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지만 헤어짐은 만남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독자 여러분 꼭 다시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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