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들의 사랑방 수다 - 충북 청주 옥산면 오산2리 경로당

"땅 임자나 농사 져먹는 사람이나
모두 힘들다고 하니...
남아 있는 벼 다 쪄 먹고
올해부터는 농사 안 짓고
그냥 사 먹을라고."

2017년 새해를 맞는 농촌 할머니들의 사랑방 수다를 들어 봤다.
지난 4일 오전에 충북 청주시 옥산면 오산2리 경로당을 불시에 찾았다. 오산2리는 옛 지명 ‘개울마을’이 말해주듯, 미호천 너머 청주시내 도시지역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만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젖소를 먹이고 농사를 짓고 살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경로당에는 매일 30명 가량 모여 윷놀이를 주로 하는데, 이날은 평소에 비해 다소 적은 인원이 참석해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새해 소원, 농촌생활의 어려움, 농업정책, 곁다리로 ‘정치 얘기’ 등을 풀어놨다. 어르신들은 윷놀이 대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올해 소원을 말해 주세요.
“노인네들 마음이야 다 똑같지 뭐. 식구 건강하고 자손 잘되는 거지.”(우건호. 79세)
“아이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김해수. 90세).
“자식들이 모두 부자로 잘 살았으면 좋겠지만, 돈은 운이 따라야 하는 거지. 부자는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잖어.”(김진선. 83세).
“예전에는 죽 먹을 때 억시게 하면 밥 먹는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어.”(정현남. 75세)

▲농촌생활이 참 어렵다 하는데요.
“살림살이가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들 하니 참 걱정이여.”(이완복. 82세).
“농사꾼덜이 월급 달라고 하면 어디 줄 생각 하겄어? 문제는 예전처럼 일한만큼 돈이 안되는 게 문제여.”(정현남. 75세).
“논 6마지기에 직불금 40만  원 나오는데, 이거 가지고 1년 먹고 살것어?”(김조자. 76세)

“남의 땅 해 먹는 사람은 땅값·트랙터값·인건비 다 떼고 나면 1년에 쌀 한 짝 남는댜. 남아 있는 벼 다 쪄 먹고 나면 올해부터는 농사짓지 말고 그냥 사 먹을라고...”(박정자. 75세).
“쌀값 떨어져 이젠 농사 져서 그만이여, 일년 내 농사짓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느냐고? 맨날 들여다봐야 되고, 날마다 물이 있나 없나 식전마다 가봐야 하고...(김진선. 83세)

▲다들 농사 안 지으면 어떻게 살게요?
“농지연금이라는게 있잖어. 요즘 땅을 내놔도 안팔려. 잘 안팔린댜. 잽혀 가지고 돈 덜 쓰고 한댜. 땅 가져다 잡히고 돈 쓰고 그런댜. 그러나 저러나 그동안 돈이 없어서 고생들 했는데...지금은 잡혀서 괜찮단댜. 자식이 안주면 그렇게라도 써야지. 나라에 맡겨 놓고 이자 받고 사는겨.”(정현남. 75세).
“집 잽혀 쓰고, 농지 잡혀 쓰고...한달에 70만 원 씩 받으면 두 내우 아숩지 않게 쓰는거지 뭐.”(박정자. 75세)

▲요즘 정치얘기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올해는 나라가 좀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어. 다만, 최순실이 빼돌린 돈은 모두 뺏어오고 난 다음에 조용해져야만 하는 거지.”(김진선. 83세).
“맞어. 스물한살짜리가 까부느라고 애를 다 낳았다고 하고...참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많어. 그동안 대통령을 최순실이 지 맘대로 휘두른겨. 그런데, 그동안 동기간을 돌보지도 않은 대통령도 나뻐...”(정현남. 75세)

이외에도, 할머니들의 사랑방 수다답게 ‘GS건설 소장, 육군대령으로 있는 아들 자랑’(김조자. 76세), ‘덕천리 3구에서 샘터 도매서점 하는 자식 자랑’(김해수. 90세), ‘매년 미국에 청국장 두 말 씩을 수출하는 얘기’(정현남. 75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얘기를 다 들어주다가는 하루해가 저물 판이라서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는 걸로 취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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