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여행작가 태원준 씨

▲ 태원준 작가와 어머니 한동익 씨.

힘들게 시작했지만 70개국 여행
앞으로 그리워할 행복한 여행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소장인 최인철 교수는 “행복을 누리려면 즐거운 추억을 가져야 된다”라고 말했다.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가지려면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세계인을 만나고,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찾아보는 여행으로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작가 태원준 씨는 60세 어머니와 배낭을 메고 두 차례에 걸쳐 528일간 70여 나라,
200여 개의 도시를 둘러본 기록을 갖고 있다. 이들 모자가 겪은 치열하고 스릴이 넘쳤던 여행담을 들어봤다.

남편·친정어머니를 잃은
엄마의 눈물 닦아주려 여행

“짧은 시간을 두고 저는 아주 소중한 사람 두 분을 잃었습니다. 제게는 아버지와 외할머니, 엄마에게는 남편, 어머니였지요. 제가 그 슬픔으로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오죽 했을까요. 강단이 있던 엄마는 연신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눈물이 너무 뜨거워 제 가슴이 타들어 갔습니다.”
태원준 씨는 대학시절 여행을 통해 얻은 힐링경험으로 어머니의 슬픔을 치유해 드리기 위해 여행을 제의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상황에 무슨 여행이냐!”며 격노했다.
태 작가는 누나와 함께 엄마를 설득해 여행길에 나섰다. 엄마가 여행 중 하루 딱 세 번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며.

가난한 여행자인 모자는 먼저 페리를 타고 바닷길로 중국 칭다오로 갔다. 2월말 봄이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칭다오의 날씨는 영하 15~2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였다. 감옥에 갇힌 듯 3일간 거의 밖을 나가지 못한 채 방 안에 머물며 칭다오 만두만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곤 어눌한 중국말로 더듬더듬 가장 저렴한 북경행 완행기차표를 샀다. 사람과 짐짝에 치이며 14시간 동안 말로 못할 곤욕 끝에 북경에 닿았다.
엄마는 칭다오의 혹한과 14시간이나 걸린 북경행 기차에서의 고통에 짜증나 “이게 무슨 여행이냐?”며 화를 냈다.

중국인의 새벽 군무 보고
여행재미 빠져든 엄마

북경 체류 셋째 날, 엄마는 새벽에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에 나가 많은 사람들이 뽕짝풍의 노래에 맞춰 군무(群舞)를 추는 모습을 보고 신이 난 엄마는 군중 속에 끼어들어 함께 춤을 췄다. 심지어 리본체조를 할 때는 리본을 빌려서 현란한 춤을 따라 하기도 했다. 엄마가 하늘로 던져올린 무지갯빛 리본은 너무 화려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가난한 모자는 숙박비가 싼 호스텔만 찾아다녔다. 호스텔마다 손님모시기 경쟁으로 이벤트를 했는데, 엄마는 만두 빚기 콘테스트에 참가해 30년간 빚어온 솜씨를 발휘, 만장일치로 1등으로 뽑혀 푸짐한 맥주를 상품으로 타내며 여행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북경을 떠나 남부지역의 고택(古宅)이 즐비한 리장이란 곳에서 차 마시기에 매료된 엄마는 아들에게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기대된다”며 중국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감동을 보였다. 당초 한 달 여정으로 계획했던 중국여행은 사흘을 넘겨 33일간 계속됐다.

중국 3대도시 뤄양에서 용문석굴(龍門石窟)을 관람할 때 엄마는 400년간 조각된 14만 점의 불상을 보며 넋을 잃고 말았다. 엄마는 “진짜 이건 내 인생 최고의 볼거리였다”라고 감탄했다.
중국체류 33일간 기숙사 같은 호스텔의 6천 원짜리 2층 침대에 잠을 자고, 길거리의 싼 음식을 먹어가며 처음 가져간 돈 700만 원 중 110만 원만 쓴 짠돌이 여행을 했다.

태국에서 병 걸린 엄마,
그래도 여행 포기하지 않아

이후 베트남행.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국민 수보다 많은 나라다. 15일간 체류하며 줄기차게 오토바이만 타고 여한 없이 베트남의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그 후 메콩강을 건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유적을 보고 또다시 놀란 엄마는 동남아 국가를 낙후된 나라로 여겼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시엔립에 체류 중 만난 서양 여인의 태국 물축제 구경을 가자는 제의에 당초 계획했던 라오스 대신 태국버스를 타고 방콕에 가서 물축제에 참여했다. 엄마는 축제에 매료돼 물뿌리기에 힘을 쏟은 탓에 과로로 호스텔 방이 병실이 돼 3일간 앓아누웠다.
그때도 엄마는 귀국을 거부하고 여행을 고집했다. 태원준 씨는 누나와 통화 중 부득이 엄마가 누워있다고 알렸다. 누나는 어버이날이 임박한 시점에 깜짝 선물로 방콕으로 가겠다고 했다.
누나는 밤늦게 방콕의 호스텔로 찾아왔다. 딸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엄청난 감동으로 상봉했다.

모녀는 그 후 1주일을 마사지와 쇼핑을 하며 신나게 보냈고, 누나는 물건을 잔뜩 사들고 귀국했다. 누나로부터 얻어낸 자금 덕분에 원기를 회복한 엄마는 이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스리랑카, 필리핀 등 100일 만에 동남아대륙을 완전 정복하는 관광을 마쳤다.
이후 아시아를 떠나 새로운 대륙 아프리카 이집트에 입성했다.

‘카우치 서핑’으로
 유럽·아프리카 35개국 돌아

아시아는 육로관광이었지만 누나의 자금지원 덕에 저가항공을 이용해 여행길이 빨라졌다. 피라미드와 사막만 보다가 물고기가 노니는 오아시스를 보고 놀랐다. 물을 무서워하던 엄마는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기도 했다.

그 후 터키를 경유해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 이스라엘의 성지 예루살렘을 거쳐 요르단, 내전(內戰)의 상처가 깃든 시리아를 거쳐 모로코까지 갔다. 모로코행 비행기엔 승객이 적어 승무원 5명에 승객 4명만이 탔다. 마치 전세기를 탄 듯 환대를 받았다고 태 작가는 말했다. 이들 모자는 유럽까지 입성해 300여 일간의 유라시아 여행을 마쳤다.

태씨 모자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본인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카우칭 서핑’이라는 초대시스템의 혜택으로 유럽과 남미여행 시엔 호사스런(?) 여행을 했다고 했다.
태씨 모자가 두 번째 시도한 200일간의 남미여행은 멕시코, 페루, 쿠바, 브라질 등으로, 유럽에 이어 35개국 40개 가정의 ‘카우치 서핑’의 환대를 받으며 순탄한 여행을 했단다.
2시간여 긴 인터뷰였지만 시간이 촉박해 남미여행담을 들을 수 없어 유감이었다.

태 작가는 “엄마와의 528일간의 세계여행은 고됐지만 재미있는 추억을 남긴, 앞으로 그리워할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모자의 스릴이 있었던 여행담은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엄마, 내친 김에 남미까지!’,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라는 책에 정교한 글솜씨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